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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미국·중국 질주하는데 … 규제에 막힌 한국 스타트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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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김봉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의장·㈜우아한형제들 대표(배달의민족 창업자)

김봉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의장·㈜우아한형제들 대표(배달의민족 창업자)

중국에는 ‘걸인도 위챗으로 동냥을 한다’는 말이 있다. 정보기술(IT) 분야에서도 최첨단인 핀테크가 그 정도로 활성화돼있다는 얘기다.

얼마 전 글로벌 경제의 두 축인 미국과 중국을 연이어 방문한 뒤 큰 충격을 받았다. 몇 년 만에 찾은 상하이는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였다. 빌딩 사이 골목 골목마다 공유 자전거 스트타업 오포(ofo)의 노란색 자전거가 넘쳐나는 장면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문재인 대통령 방미 일정에 동행해 둘러본 워싱턴에서도 미국 IT기업들의 숨가쁜 경쟁 상황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세계 경제를 이끄는 기업은 대부분 금융이나 제조업에 속해 있었다.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디지털 IT 기업 일색이다.

특히 전통적 강자 미국 기업들과 그 뒤를 바짝 쫓는 신흥 중국 기업들의 선전이 눈부시다. 벤처투자사 클라이너 퍼킨스가 최근 발표한 ‘2017 인터넷 트렌드 보고서’를 보면 글로벌 인터넷 기업 시가총액 20위 기업 가운데 1위는 애플, 그 뒤를 알파벳, 아마존, 페이스북 등 미국 기업이 일제히 포진했다. 중국 기업 중에서도 텐센트(5위), 알리바바(6위), 바이두(10위) 등 7개나 이름을 올렸다. 미국(12곳) 다음으로 많은 숫자다. 일본 기업으로는 야후재팬이 20위를 기록해 유일하게 순위에 포함됐다. 한국 기업은, 불행히도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디지털 경제의 핵심은 혁신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제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의 신기술은 과거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그랬던 것처럼,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우리의 삶에 스며들 것이다. 혁신을 장려하는 사회·경제적 분위기와 기술 기반의 디지털 경제가 우리나라에서도 국가 전략의 중심에 놓여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국내 비즈니스 환경과 이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 결정권자의 인식은 이런 추세를 따라잡지 못하는 것 같다. 얼마 전 아산나눔재단이 발표한 ‘스타트업코리아!’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가장 투자를 많이 받은 100개 스타트업 중 절반 이상이 ‘만약 한국에서였다면 규제에 막혀 사업을 시작도 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글로벌 혁신 모델 사업의 절반 이상이 한국에서는 제대로 꽃피우기는커녕 싹도 틔워보지 못할 풍토라는 말이다.

‘동냥은 못 할망정 쪽박은 깨지 말라’는 옛말이 있다. 스타트업 기업들이 무슨 대단한 정책적 지원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미국이나 중국만큼은 아니어도, 혁신적 아이디어와 열정으로 도전하는 창업가들의 기를 꺾거나, 이제 막 자라나는 스타트업의 발목을 잡는 일만은 없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김봉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의장·㈜우아한형제들 대표(배달의민족 창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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