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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정담] DJ 942일, 이회창 246일, 안철수 86일 … 빨라지는 정계복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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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3일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의 전격적인 전당대회 출마 선언을 두고 정치권에선 의외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안 전 대표의 정계복귀 선언은 5·9 대선 패배 후 칩거 86일 만에 나왔다.

DJ, 호남·동교동 지지 업고 돌아와 #이회창, 당 소장파 요구로 총재 복귀 #문 대통령은 당대표 발판 대선 출마

대통령 직선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87년 체제’ 이후 대선에 나선 정치인들은 대개 한 번쯤 탈락의 쓴맛을 봤다. 그러나 성공적인 ‘컴백’을 위해 당권부터 잡았다. 하지만 정계복귀 모델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① 은퇴 후 복귀한 DJ 모델=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패배한 뒤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영국에서 머물다가 95년 7월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해 정계로 복귀했다. 복귀 당시 ‘명분이 없다’는 비난에 직면했으나 ‘정계은퇴→외유→신당 창당 및 당권장악’을 통한 DJ 복귀 모델은 성공했다.

유사한 길을 걸었던 예로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있다. 손 전 대표의 경우 2012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문재인 후보에게 패한 뒤 독일 유학을 떠났다. 이후 2014년 7·30 재·보선에서 수원 팔달에 출마했다 패한 뒤 바로 다음 날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전남 강진의 토담집에서 2년2개월간 칩거하다가 2016년 10월 정계에 복귀했다. 하지만 그의 대선 도전은 실패로 끝났다.

한정훈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은 창당하자 민주당 소속 65명의 의원이 동참하면서 제1야당의 지도자로 올라섰다. ‘호남’과 ‘동교동’이라는 확실한 기반을 보유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3김 시대 이후 보스정치가 사실상 소멸된 상황에서 다른 정치인에게 적용하긴 어려운 방식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② 당 장악 성공한 이회창 모델=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97년 대선 패배 후 정계은퇴 선언 없이 물러나 있다가 8개월 만에 당 총재로 복귀했다. 당시 한나라당 수도권 소장파 의원 그룹이 ‘조순 퇴진, 이회창 복귀’를 요구하면서 분위기가 조성됐다.

한 교수는 “조순 전 총재를 당내에서 워낙 흔들었기 때문에 이 전 총재의 조기 복귀는 정서적 반감이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DJ 정부가 ‘세풍(국세청 통한 대선 자금 마련)’ 등 정치적 사건으로 이 전 총재와 한나라당을 몰아붙인다는 야권의 위기의식도 한몫했다. 이후 이 전 총재는 당을 장악해 갔다. 2000년 총선을 앞둔 2·18 공천파동에선 허주(김윤환) 등을 밀어내고 오세훈 전 서울시장, 원희룡 제주지사 등을 영입했다.

③ 구원투수 모델=정당이 혼란에 빠질 때 ‘구원투수’ 역할로 등판하면서 자연스럽게 복귀하는 경우다. 앞선 모델보다 권력의 크기는 작지만 당 혁신을 명분으로 삼아 결과적으로 성공을 거둔 문재인 대통령이 대표적 사례다. 문 대통령은 계파 갈등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던 새정치연합의 2015년 2월 전당대회에 출마하면서 대선 출마 기틀을 다졌다. 당 쇄신 문제로 안철수 전 대표와 갈등을 겪어 분당 사태까지 일어나는 등 절명의 위기에 몰렸지만 내홍 끝에 입당한 10만 명의 온라인 당원이 ‘친문’을 표방하면서 든든한 지원군으로 활약했다.

④ 점점 빨라지는 복귀 기간=본지가 유력 정치인들의 정계복귀까지 걸린 시간을 파악한 결과 DJ는 942일(2년7개월, 92년 12월 19일 정계은퇴~95년 7월 18일 정계복귀) 걸렸다. 문 대통령도 2012년 12월 19일 대선 패배 후 741일 후인 2014년 12월 29일 당권 도전을 선언했다. 이회창 전 총재는 97년 1차 대선 패배 후 246일 만에 당 총재 경선 출마를 선언했고, 2002년 2차 대선 패배 이후에는 정계은퇴 선언 이후 무려 1784일 만에 세 번째 대선 도전을 선언하면서 정계로 돌아왔다.

반면 2007년 12월 대선 패배 후 석 달여 뒤인 2008년 3월 12일 총선 출마를 선언했다가 낙선한 정동영 국민의당 의원 모델도 있다. 85일 만이어서 안 전 대표(86일)보다 복귀행보가 빠르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대선 패배 41일 만에 당권 도전을 선언했다.

엄태석 서원대 교수는 “정계복귀는 정치인이 자신의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타이밍을 골라야 하는 가장 어려운 숙제”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당내 상황이 혼란에 빠질수록, 당내 계파 의원이 많을수록 일반적으로 정계복귀에는 이상적인 조건”이라고 말했다.

유성운·안효성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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