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껏 부푼 기득감이 큰 부담|노태우 새 정권의 경제공약 얼마나 지켜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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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내년 2월이면 노태우 정권이 정식 출범한다. 선거기간 중 민정당이나 노후보는 야당후보들 못지않게 많은 경제공약을 제시했다. 과연 새 정부의 경제 정책방향은 어떻게 될 것이며 「공약」들은 제대로 지켜질 것인가가 경제계의 가장 큰 관심사이다.
민정당이 내세웠던 경제정책들을 야당의 그것과 비교하자면 행정부를 활용할 수 있었다는 집권 여당의 「프리미엄」적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수치적인 뒷받침과 함께 경제 청사진을 더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것과, 무리하기는 오십보 백보였지만 그래도 덜 무리한 욕구 보상적 공약 등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긍정적으로 보면 행정부의 경제 논리에 이미 친숙해 있는 여당이 계속 집권을 하는 것이므로 경제정책의 일관성이나 행정효율면에서는 단층과 부작용이 훨씬 덜할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 있다.
가깝게는 다음 주안으로 확정·발표해야 할 88년 경제운용 계획부터가 큰 진통없이 성안될 수 있을 것이고, 내년부터 시행될 농어촌 의보·최저임금제·국민연금제 등 굵직한 복지 사업들과 국민주 보급 등도 애초부터 정부·여당의 「합작품」이었으므로 근본 줄기의 손질없이 시행에 들어갈 수 있게 됐다.
민정당이 내놓았던 「노태우 경제구상」과 같은 정책제시는 그 기본 골격과 전망치들이 모두 경제기획원등 행정부의 긴밀한 도움을 받아 작성된 것이었으므로 거꾸로 민정당의 정책자료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내년도 경제운용의 폭과 방향을 너끈히 읽어낼 수 있을 정도다. <별표 참조> 그중에서도 관심이 가는 대목들을 골라보면 ▲주택을 중심으로 한 내수 투자 확대 ▲세제개혁의 착수 ▲대통령 직속의 금융자율화 추진위원회 설치 등이 있고, 특히 앞으로 임금이나 추곡수매가 등 올해 큰 진통을 겪었던 「소득보상적」 가격 결정이 야당이 집권했을 경우에 비해서는 「안정론」쪽으로 더 기울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민정당은 이를테면 「최저임금 30만원 보장」 대신 「근로자 임금을 93년까지 배증」한다고 했으며, 「농어촌 부채 전면탕감」보다는 부채부담의 최소 및 「공업화를 통한 소득 지지」를 표방함으로써 근로자나 농어촌에 대한 「정치적 빚」이 야당만큼 무겁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거론된 정책제시나 총량 전망치들이 비교적 합리적이라 하더라도 민정당이 급한 김에 쏟아 놓았던 통큰 개별공약들과는 아무래도 조화점을 찾기 힘들 것이다.
단적인 예로 선거 직전이었던 지난 7일 민정당이 야당의 「농가부채 전면탕감」공약에 떠밀린 끝에 농어촌 표를 사수하기 위해 아예 당일 날로 시행에 들어가버린 농어가부채 추가경감 조치가 바로 그렇다.
또 민정당의 큰 공약사업으로 검토하다가 현 고위층에의 보고를 통해 행정부가 간신히 뒤로 미뤄놓았던 새 만금 간척사업을 며칠 뒤 야당총재가 이를 공약하자 앞 뒤 재볼 겨를도 없이(?) 농림수산부로 하여굼 서둘러 발표하게 한 것도 마찬가지다. 그 사업은 건설부가 최근 발표했던 장기국토개발 계획에서조차 제외되었던 것이었다.
농어가부채의 이번 추가 경감조치는 당장 내년부터 1천5백억원의 국고보조가 필요하고, 앞으로도 최소한 5년 거치 7년 분할 상환이 끝날 12년간 매년 1천억원 이상이 들어가게 된다.
그런데도 내년 예산상의 조치는 아직 아무것도 된 것이 없고, 이것 하나만으로도 내년 예산은 추갱을 짜야할 판이다.
확정된 내년 예산상 이같은 추가적인 사업을 위해 쓸 예비비는 8백억∼9백억원이 고작이기 때문이다.
예산상의 조치가 전혀 안돼었기로는 새만금 사업도 마찬가지다.
사업성은 둘째치고 89년부터 96년까지 당장 9천7백억원이 들며 계속해서 2001년까지는 총3조원이 넘는 재원이 필요한데도 지금까지 챙겨놓은 돈 줄은 매년 5백억∼7백억원씩의 대체 농지조성비가 고작이다.
서울∼강릉간 고속전철이나 서해안 고속도로도 둘다 7천억∼8천억원이 들어가는 큰 사업이지만 현재까지 반영된 예산 조치는 각각 6억5천만원, 3억원씩의 타당성 조사비 뿐이다.
제대로 된다 하더라도 내년 말이나 돼야 타당성 여부가 판가름 날 것이고 그렇다면 빨라야 89년이나 90년부터서야 공사가 시작될 것이니 공약을 한 민정당으로서는 당장 걱정할 일은 못된다.
그러나 동서고속전철 이전에 경부고속전철도 이미 타당성 조사를 다 끝내놓았지만 돈이 없어 아직 실시 설계조차 못하고있는 전례도 있으니 만큼, 정부·여당으로서는 일반 국민의「집단적 건망증」에 기대를 거는 것(?)이 더 속이 편할지 모른다.
심지어 호남선 전철화 사업같은 공약은 아직까지 경제기획원 예산실과 전혀 한마디 얘기도 오가지않은 완전히 「독창적」인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새 정부는 선거공약과 관계없이 해결해야 할 경제적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뛰는 물가와 부동산 투기를 잡아야 하고, 당장 선거가 끝나고 나니 기다렸다는 듯이 양담배·농산물 등의 대미 개방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정치적 어려움도 닥쳐 있다. 그 어려움을 피하려면 미국의 강력한 무역 보복으로 인한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감수해야 할 판이다.
돈줄도 죄어잡아야 하며, 내년의 노사분규·추곡수매가인상 등의 고비도 넘겨야 한다.
그러고도 자신들이 제시한 미래의 경제 청사진을 실현시켜야 할 마당에, 역시 선거통에 내 건 통큰 공약사업들과 한껏 불려놓은 각 계층, 각 지역의 기대감은 무거운 「족쇄」가 아닐 수 없다. <김수길기자>

<노정권의 경제 공약>

<7대 실천과제>
▲정부소유기업은 물론 민간 대기업의 주식 대중화 추진 ▲기능인 우대제 마련 ▲농어민소득 배증 계획 추진 ▲주택투자 확대 ▲일할 능력이 없는 계층에 대한 국가보호확대 ▲장애자 복지확충 ▲영세민자녀에게 고교까지 학비완전무상화

<6대 전략>
▲수출산업 기술집약화 ▲대 공산권교역 확대 ▲서해안 시대 개막 ▲국가의 세계적 부품 산업기지화 ▲과학기술투자 GNP의 3% 수준까지 제고 ▲비인플레방식 견지

<경제 청사진>
▲오는 93년 GNP 2천6백억달러, 1인당 GNP 6천달러, 농가소득 연 1천3백만원, 근로자 임금 연 8백만원, 총 외채 60억달러 수준으로.

<공약사업>
▲96년까지 서울∼설악산 고속전철 건설 ▲서해안 고속도로 건설 ▲호남선 복선화·전철화 ▲평택항 개발 ▲대불간척지 2백40만평 조성▲대전직할시 승격 ▲목포공항 재개항·속초 공항의 국제공항화 ▲수도권 전철 평택·천안 연장 ▲국영기업 이사장제 페지 ▲사관 학교 사무관 특채 폐지 ▲영산강 종합개발 ▲목포대 90년에 종합대학 승격 ▲5년간 공공임대주택 30만호 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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