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와 여성…문화부 여기자 방담|여성표밭 노린 인기정책 만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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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이번 대통령 선거를 통해 나타난 두드러진 변화는 명실상부하게 여성이 정치세력으로 부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중도사퇴를 하긴 했지만 건국이래 최초로 여성대통령후보도 등장했으며, 여성계 인사들의 정당 참여 활동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또 대통령선거사상 처음으로 여성유권자가 남성유권자보다 약32만명이나 많아짐으로써 여성표밭을 겨냥한 각 정당들의 여성정책도 쏟아져 나왔다. 대통령입후보자들에 대한여성스캔들이 난무한 것도 전례없던 일.
선거열풍의 소용돌이에서 격랑에 휩쓸렸던 「여성」을 주제로 취재여기자들의 방담을 마련했다.
-최초의 여성대통령후보 등장은 당사자가 여성계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 있는 대표적 인물인가의 여부를 차치해 놓고라도 여성계로서는 무척 고무적인 일이었읍니다.
그런데 정작 입후보자 자신은 제 역할을 충분히 해내지 못한채 모호한 행동만을 계속, 급기야 이상한 풍문과 함께 사퇴하고 말아 실망이컸습니다. 제가 만나본 여성들중엔 배반감을 느낀다는 이들조차 있었어요.
-결국 그 여파가 한국여협에 까지 미쳐 회장직을 둘러싼 잡음이 계속되고 있어요. 대통령입후보로 인한 홍숙자회장의 사퇴가 「회장결원」으로 이사회에서 해석됐는데도 일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탓이지요. 이 일의 배후를 들여다보면 개인적 이익을 위해 단체를 이용하려는 계산이 작용하고 있어 정말 유감스럽습니다.
-이번 선거에는 여성단체들도 비상한 관심을 나타냈어요. 한국여성유권자연맹·여성신문·가정법률 상담소등에서 잇달아 세미나·토론회·강연회등을 마련하고 바른 주권행사를 강조했지요.
또 대한 YWCA는 공정선거를 촉구하는 건의서를 민정·민주·평민·공화4당 총재에게 보냈고, 대한주부클럽연합회는 깨끗한 한표를 기권없이 행사하여 누가 당선되든 승복하고 축하하자는 호소문을 내기도 했읍니다.
-재야여성세력의 집결체라 할만한 여성단체연합은 「여성유권자는 단결하여 군부독재종식하자」는 내용의 여성유권자 대회를 대대적으로 열기도 했습니다. 매스컴에 대한감시·비판도 날카로 왔는데 KBS TV시청료거부 범시민운동 여성연합은 선거를 앞두고 기술적 조작보도가 여전하다며 반성을 촉구하기도 했지요.
-각 정당의 여성정책도 풍성했습니다. 각 정당이 내건 정부차원의 여성기구만해도 여성부 신설 (민정)·대통령직속의 여성위원회나 여성부설치 (민주)·여성청이나 여성국 설치 (평민)·여성관련부서의 독립 및 강화 (공화)등 화려하기 싹이 없읍니다.
그러나 과연 이같은 기구가 충분히 내용을 검토한후 제시된 것이기 보다는 「인기용」으로 급조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아요. 일례로 민정당이 최근 통과시킨 남녀고용평등법은 벌칙조항도 약하고 동일가치 동일임금이라는 중요내용이 빠져있어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았지요.
그때 같이 통과된 혼인특례법을 두고도 「선거용」 이라고 말들이 많았습니다. 이법은 동성동본결혼으로 불편을 겪고 있는 이들을 한시적으로 구제하는 것인데, 여성계에서는 두번씩이나 일시적인 조처를 취할 수 있는것이라면 아예 폐지하는 것
이 옳다는 주장이었지요. 이것은 제5공학국이 들어서며 민정당이 내걸었던 가족법개정 공약이 끝내 실현되지 못한 전과와 맞물리면서 더욱 냉소를 받았읍니다.
-이같이 급조된 여성정책이나 공약등은 여성유권자를 우롱하는 것일뿐이라고 분개하는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구체성도 없으면서 마치 사탕하나 더 주는 식으로 공약을 남발하는 것은 여성유권자를 어리숙한 인간으로 여겨 하는 행동이란 겁니다.
-「여성=미숙아」 란 시각이 정치인들에게 팽배해 있다는 증거가 또 있습니다. 모대통령후보를 겨냥, 여성에게 인기 있는 대통령이란 것도 자랑거리냐는 투의 공박글귀가 담긴 흑색선전용 전단이 각 가정에 뿌려지고 있어요. 여성표밭은 욕심나면서 여성은 우습게 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질 않아요.
-그러고 보니 이번 선거처럼 성스캔들이 난무한 적도 없는 것 같습니다. 사실여부야 당사자들만 알겠지만 사회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공인인 여성까지 거론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어떤 사람의 정치적 야심을 위해 그들 각 여성의 가정이 깨어져도 괜찮다는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성스캔들이 담긴 흑색선전용 전단이 각 가정으로 우편배달되고 있어 더 큰 문젭니다. 어떤 주부는 아이들이 미리 뜯어 볼까봐 겁이 난다고 걱정이 태산같았습니다. 일부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성단체가 여성 관계를 밝히라는 성명을 내기도 했지만 오히려 대부분의 여성계 인사들은 이처럼 여성인격이 무방비 상대에서 침해당하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막아야한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읍니다.
-대권주자들의 부인에 대해서도 일반인들의 관심이 무척 많았읍니다. 유권자들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와이드 인터뷰난을 마련했읍니다만, 선거일 직전까지 끝내 한명의 인터뷰가 이뤄지지 못해 독자들에게 송구스럽습니다.
-문의전화도 빗발 쳤어요. 어제도 한 여성유권자가 자신은 후보 부인을 보고 표를 던지려고 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마지막 한사람이 나오지 않는다며 문의해 왔어요. 경우는 그래도 나은 셈이고 일부러 신문사가 특정후보 부인은 기사를 안싣는게 아니냐고 엉뚱한 오해(?)를 할때는 난감했읍니다.
-미국 한 신문에서 역대퍼스트레이디에 대한 평가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평가기준이 됐던 것이 △배경 △국가에 대한 공헌도 △마음씨 △지도력 △지성 △여성미 △성취력 △용기 △공공이미지 △대통령에 대한 가치등 10가지였읍니다.
이것을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할수는 없지만 국가에 대한 공헌은 우리나라에서도 중요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퍼스트레이디는 대통령의 시선이 미치지 못하는 사회의 어두운 구석에 신경을 쓰고 바로 잡으려는 노력을 해야할 것입니다. 「정치는 잘 모른다」거나 무조건 남편뒤에만 숨어 있다면 과연 퍼스트레이디라는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습니다.
-여성사회진출을 부르짖으면서도 「당선되면 집사람은 늘 집에만 있도록 하겠다」는 식의 자세도 반드시 옳다고 볼수만은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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