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노예사병' 논란..."골프병,테니스병,과외병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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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골퍼 A(26)씨는 군 복무 기간인 2012~2014년 경기도의 한 군단에서 ‘골프병’으로 차출돼 근무했다.

간부 복지 돕는 '복지 병사' #"이참에 병사 사적 유용 근절해야"

A씨는 “군 생활 내내 골프와 관련된 반복된 일과였다. 아침에 눈 뜨면 골프장 인근 야산에서 골프공 주워오기, 오전엔 간부 사모님들 개인레슨 해주기, 오후엔 다시 공 주워오기, 일과 후엔 간부들 레슨 해주기였다”고 말했다.

그는 “골프병이라는 건 편제에 없는 보직이다. 테니스병ㆍ목욕탕병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군단 경비소대에 배치돼 한 생활관에서 간부들을 위한 ‘복지 병사’라는 명목으로 지냈다”고 설명했다.

공관병에 대한 '갑질' 의혹을 받고 있는 박찬주 육군 2작전사령관(대장)이 1일 전역 지원서를 제출했다. 사진은 2015년 9월 청와대 보직신고 당시 박찬주 사령관. [연합뉴스]

공관병에 대한 '갑질' 의혹을 받고 있는 박찬주 육군 2작전사령관(대장)이 1일 전역 지원서를 제출했다. 사진은 2015년 9월 청와대 보직신고 당시 박찬주 사령관. [연합뉴스]

국방부가 1일 공관병 제도 폐지 방침을 시사하면서 그와 유사한 군 부대의 잘못된 관행에 대한 고발성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골프병ㆍ테니스병 등 제도 밖에서 계속되는 ‘복지병사’를 이참에 근절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육군 제2작전사령관 박찬주 대장 부부가 공관병을 사적으로 부렸다는 논란의 후폭풍이다. 예비역들은 “근본적인 문제는 간부들이 개인의 영달을 위해 병사들을 마구잡이로 데려다 쓰는 문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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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병(士兵) 아닌 사병(私兵)”

프로 골퍼 A씨의 사례처럼 군대에는 많은 비공식적 사병(私兵)들이 있다. 이들은 주로 간부들의 취미생활이나 허드렛일을 돕는다.

강원도에서 육군 복무를 한 김동건(27)씨는 “병사들이 각종 명목으로 차출되는 건 모든 예비역이 다 아는 얘기다. 지휘관이 바둑을 좋아하면 바둑병이 되는 거고, 개를 좋아하면 사육병이 되는 거다”고 말했다.

테니스병으로 근무했던 B씨도 “군단장이 바뀌면 복지병사들의 수도 달라졌다. 신임 군단장이 테니스를 좋아하면 전 군단에 테니스 선수 출신 병사들을 추가 차출하라는 전화를 돌렸다”고 말했다.

공관병과 달리 이들은 공식적인 보직이 아님에도 수십년간 관행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병들은 상대적으로 편안한 군 생활을 특혜로 생각하거나, 상관의 명령으로 생각하고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 잘못된 관행은 당연시되면서 정착됐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1980년대 초에 군 복무를 한 내 친형도 당시 테니스병으로 근무했다. 어느 규정에도 존재하지 않는 테니스병 제도가 최소 30여년 전부터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다”고 말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과외병ㆍ대리운전병 등 특이한 복무 경험담들이 수없이 쏟아진다.

명문대 재학 중 2012년에 입대했던 김모(27)씨는 “명문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지휘관 자제의 개인 과외를 해야했고, 과제도 대신 작성하면서 ‘과외병’으로 불렸다”고 말했다. 사단 고위 간부 운전병 출신 오모(27)씨는 “한 밤 중에도 간부가 개인 술자리 끝나고 나를 대리운전 기사로 이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말했다.

“제가 왜 군대에서 ‘똥독’ 올라야 하나요?”

복지 병사와 달리 꼭 필요한 일이지만, 민간에 맡겨도 될 일을 사병들에게 전가하는 사례도 많다. 대표적으로 인분처리 병사다.

경기도 포천에서 운전병으로 복무했던 김동현(27)씨는 “군 생활 내내 일주일에 2~3번은 인분을 처리하러 갔다. 정화조에 호스를 잘못 꼽으면 오물이 몸에 튀기도 했는데, 이 때문에 ‘똥독’이 오른 적도 있었다. 나라 지키러 온 거지 똥 푸러 온 게 아닌데 자괴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군인권센터의 김형남 간사는 “국방부가 병사들이 본연의 임무인 ‘전투’에 열중할 수 있도록 비전투 분야를 민간인력으로 대체하겠다고 공언한 만큼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 인분처리도 민간에 맡겨야 할 일이지, 나라지키겠다고 온 남의집 귀한 자식들을 데려다 공짜로 쓸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국방과 관련 없는 분야에 병사들을 차출해가는 모든 행위를 근절하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국방부가 매번 병력이 부족하다고 주장하면서, 또 사적인 일에는 병사들을 데려다 쓰고 있으니 국민들이 실망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국방의 의무’를 다 하러 간 젊은 청춘들에게 자긍심을 줄 수 있는 개혁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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