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원 든 신항 … 왜 분주하나 했더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연습만 하는 신항
지난달 19일 문을 연 부산 신항이 그동안 단 한 건의 화물도 유치하지 못 해 텅 비어 있다. 15일 직원들이 컨테이너를 내려 차량에 싣는 연습을 하고 있다. 부산=송봉근 기자

화물 쌓인 상하이 양산항
신항의 경쟁 상대인 상하이 양산항의 개장(2005년 12월 10일) 사흘 뒤 전경. 야적장에는 3~4단 정도의 컨테이너가 쌓여 있을 정도로 활기를 띠고 있다. [한진해운 제공]

16일 오전 부산시 강서구 성북동 신항부두. 높이 70m의 안벽(岸壁)크레인 9대가 컨테이너를 매단 채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트레일러가 컨테이너를 받아 실은 뒤 야적장으로 이동한다. 안벽크레인에서 50여m 떨어진 야적장엔 18대의 야적장 크레인이 컨테이너를 쌓고 있다. 부두 입구 주차장에 줄 지어 있던 50여 대의 트레일러는 차례를 기다렸다 컨테이너를 싣고 부두를 오간다. 하지만 이는 실제 상황이 아니다. 지난달 19일 문을 연 신항이 아직 화물을 유치하지 못해 한 달이 다 되도록 짐을 싣고 내리는 연습만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3개 부두 공사비 8700억원, 방파제 1230억원 등 1조원 가까이 들여 개항한 신항에 배가 들어오지 않는다. 앞으로 신항에는 2011년까지 인천국제공항(5조901억원)보다 두 배 가까운 9조1542억원(국비 4조1739억원, 민자 4조9803억원)이 들어갈 예정이다. 25일 처음으로 들어올 예정인 컨테이너선도 기존 부산의 북항을 이용하던 선박을 빼 오는 것이어서 북항의 반발을 사고 있다.

"신항을 동북아 허브항만으로 발전시켜 선진 한국을 여는 희망의 진원지로 삼겠다"고 밝힌 노무현 대통령의 개항식 축사를 무색하게 하는 상황이다. 부산경제살리기 시민연대 박인호 대표는 "엄청난 세금을 들여 신항을 만들고도 일감이 없어 놀리고 있는 것은 국가 자원 낭비"라고 지적했다.

◆ 직원 210명 연습만=신항에는 현장 근로자 110여 명과 사무직 100여 명 등 21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현장 근로자는 주간과 야간조로 나눠 8시간 이상 선적과 하역 연습을 하고 있다.

항만업계는 5만t급 컨테이너부두 1개 선석당 인건비.장비 감가상각비 등 월평균 20억원이 소요되는 점을 감안할 때 신항의 경우 지난 1개월간 60억원 이상이 운영 경비로 지출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또 3개 부두를 건설하는 데 들어간 민자 8700억원에 대한 금융비용까지 합치면 손실은 더 커진다.

해양수산부는 당초 신항이 조기 개장(1년4개월)으로 공사비.보상비 등 사회경제적 비용이 6110억원 절감된다고 밝혔다.

◆ "북항 물량 빼간다" 반발=부산신항만㈜은 스위스의 선박회사인 MSC의 대형 컨테이너선이 25일부터 매주 두 차례 신항에 정기 기항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화물은 인근의 북항 감만부두 대한통운터미널에 주당 다섯 차례 입항하던 것 중 두 차례를 신항으로 바꾸는 것이다. MSC는 4월부터 한 차례 더 신항을 이용, 신항서 연간 30만 개의 컨테이너를 처리할 계획이다. 연간 처리물량(90만 개)의 33%가 빠져나가게 되는 대한통운 측은 "신규 물량을 확보하지 못하자 북항 물량을 빼가고 있다"며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부산발전연구원 허윤수 연구원은 "신항이 물량을 제대로 확보하지 않고, 배후수송망 등 인프라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서둘러 개장한 탓에 이 같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신항만 존 엘리엇 영업이사는 "하반기에 본격적인 물량 확보가 가능하고 부두의 처리능력을 감안할 때 올해 80만 개의 컨테이너를 유치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부산=강진권.김관종 기자 <jkkang@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