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궂은 운명, 청와대와 사드…8월 방중 물 건너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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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주한미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ㆍ사드) 체계 배치 문제를 일종의 ‘지렛대’로 여겼다.

절차적 정당성과 적법성을 이유로 사드 배치 절차를 중단시킨 뒤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 대미(對美) 협상력을 높이면서도 중국에게는 북핵 문제 해결에 나서라는 압박용으로 쓸 요량이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통해 우리 정부의 외교력을 높이려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 지렛대의 부산물로 나온 게 경북 성주 골프장의 사드 배치 예정부지 전체(70만여㎡)에 대해 일반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겠다는 지난 28일 우리 정부의 발표였다. 정부가 일반 환경영향평가에 소요되는 시간을 10~15개월 정도로 예상한 만큼 적어도 그 기간 동안 정부가 외교력을 발휘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게 청와대가 그리는 가장 바람직한 모습이었다.

문 대통령이 지난 6일 한ㆍ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사드 배치의) 절차적 정당성을 찾는 과정에서 시간을 확보하고, 그 기간 중 핵 동결이라든가 북핵 문제의 해법을 찾아내면 결과적으로 사드 문제가 해결되는 것 아니냐”고 말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그리고 논란이 되고 있는 사드 발사대 [중앙포토]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그리고 논란이 되고 있는 사드 발사대 [중앙포토]

하지만 북한이 지난 28일 오후 11시 41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 2차 시험 발사를 감행하면서 청와대의 계획은 대폭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문 대통령이 지난 29일 오전 1시 청와대에서 긴급 주재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에서 “사드 잔여 발사대 배치를 비롯해 한ㆍ미 연합방위 강화 및 신뢰성 있는 억제력 확보 방안을 확보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미 사드 발사대 2기는 성주에 배치돼 있는데, 여기에 더해 국내에 반입은 했지만 미군 기지에 보관하고 있는 나머지 4기를 추가로 배치하는 걸 미군 측과 협의하라는 지시였다. 사드 1개 포대는 레이더와 발사대 6기로 구성되는 만큼 사실상 온전한 사드 포대의 완성이 멀지 않았다는 걸 의미한다.

올해 안에 끝나지 않을 일반 환경영향평가 절차를 밟겠다는 정부 발표가 지난 28일 오전 10시 30분이었고, 문 대통령의 지시가 지난 29일 오전 2시에 나온 걸 고려하면 ‘연내 배치 무산’에서 사실상의 ‘조속한 배치’로 우리 정부의 입장이 바뀌는 데는 15시간 30분이 걸린 셈이다. 더군다나 추가 배치되는 발사대 4기는 국방부 ‘보고 누락’ 사건의 단초였다. 청와대가 지난 5월 30일 “매우 충격적”이라는 문 대통령의 발언을 전하며 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을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조사까지 받았다. 위승호(육사 38기ㆍ중장) 전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은 이 사건의 책임을 지고 육군 정책연구관으로 좌천됐다.

그러니 청와대로선 다소 머쓱한 상황이 됐다. 당장 야당에선 30일 “일반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겠다고 한 말에 잉크도 마르기 전에 문 대통령은 사드 발사대 4기를 임시로 추가 배치하라고 지시했다”(김유정 국민의당 대변인)는 비판이 나왔다.

문제는 ‘사드 지렛대’가 더 이상 중국 정부에게 효율적인 수단이 아니란 점이 보다 분명해지고 있다. 청와대는 환경영향평가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최종 배치’가 아닌 ‘임시 배치’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중국은 “(사드) 배치 과정을 중단하며 관련 설비를 철거하길 강력히 촉구한다”(겅솽 외교부 대변인)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에 따라 8월 24일 한ㆍ중 수교 25주년을 계기로 문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는 방안이 무산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30일 기자들과 만나 사드 관련 중국 측의 유감 표명에 대해 “그 부분에 대해서 지금 우리가 언급할 내용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방중 관련해선 “계속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만 답했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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