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간담회 이후…어려운 '숙제' 풀기 나선 기업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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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대기업이 문재인 대통령이 내준 ‘숙제’ 풀기에 들어간다. 문재인 대통령과의 간담회에 참석한 14대 기업은 문재인 대통령이 주문한 정책 과제를 이행하기 위에 후속 작업에 착수했다. 재계는 이번 간담회를 통해 정부의 반기업정서를 어느 정도 해소하고, 통상 압력과 대내외 불확실성 등으로 고전하는 기업의 현실을 알린 자리가 됐다고 호평하고 있다.

기업마다 일자리 창출, 정규직 전환, 상생방안 추진키로 #정책상충(相衝) 스트레스, 구조조정 기업은 여력 제한적

문 대통령은 1차·2차 간담회에서 경제살리기보다 중요한 과제는 없다며 새 정부의 국정과제에 재계가 호응해달라고 주문했다. 문 대통령이 주문한 정책 키워드는 '일자리 창출', '상생 협력', '경제살리기'로 압축된다. 일자리가 많아져야 소득이 생기고, 대·중소기업 간의 동반성장이 이뤄져야 내수가 활성화한다. 모두 대기업의 적극적인 협력이 필요한 정책이다. 그래야 이를 바탕으로 고용의 질을 높아지고, 소비가 늘면서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는 논리다.

문재인 대통령이 허창수 GS 회장(왼쪽 두번째부터), 신동빈 롯데 회장, 황창규 KT 회장 등과 경제 현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허창수 GS 회장(왼쪽 두번째부터), 신동빈 롯데 회장, 황창규 KT 회장 등과 경제 현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30일 재계에 따르면 주요 기업들은 간담회에 앞서 발표한 대책과 별개로 문 대통령과 논의한 내용을 반영한 후속 작업 마련에 착수했다. 한화는 서비스 계열사의 상시업무 종사자 850여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이번 주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한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청와대 간담회 직후 긴급 본부장 회의를 소집해 후속 조치를 주문했다. 권 회장은 “일자리 나누기, 비정규직 전환 문제, 2ㆍ3차 협력기업과의 상생협력 등을 비용으로만 인식하지 말자”며 “산업 생태계 전반의 경쟁력 향상 방안으로 사고를 전환해 적극적으로 검토하자”고 말했다.

신세계는 ‘상생 편의점’을 기치로 내건 편의점 이마트24를 통해 기존 3무(無) 정책(24시간 영업하지 않고, 로열티가 없고, 영업 위약금이 없는 것)에 더해 추가적인 상생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삼성전자·현대차·LG·SK·GS 등도 신입사원 채용 확대 및 2·3차 협력사에 대한 추가 방안 등을 논의 중이다.

하지만 기업의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기업이 정부정책에 적극 호응하겠다고 밝히면서도, 양립하기 어려운 과제가 한꺼번에 주어지는 ‘상충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당장 정부에서 추진하는 ‘정규직 확대’, ‘최저임금 인상’ 등은 기업의 비용 부담을 증가시킨다. 정부의 ‘일자리 창출’에는 되레 마이너스가 되는 요인들이다.

삼성전자의 2분기 사상 최대 실적은 수 년 전부터 진행해온 연구개발(R&D)ㆍ시설투자의 결과물이다. 중국의 추격이 무서운 상황에서 장기 투자에 들어갈 재원을 다른 곳에 빼내 쓰기가 쉽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왼쪽에서부터), 최태원 SK 회장,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등과 경제 현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왼쪽에서부터), 최태원 SK 회장,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등과 경제 현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현대기아차는 더 암울하다. 밖으로는 세계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ㆍ중국에서의 판매 부진이 이어지는데다, 안으로는  노조의 대규모 파업과 통상임금 소송, 리콜 등으로 시름하고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물론이고 신규 채용도 여력이 제한적이다.

두산의 경우 최근 수 년 간 대대적인 감원ㆍ구조조정을 통해 최근에야 흑자가 난 상황이다. 조선업황 부진으로 구조조정에 나선 현대중공업, 중국의 사드(THAADㆍ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조치로 직격탄을 맞은 롯데도 적극 나서기는 쉽지 않다.

한 재계 단체 관계자는 “상생경영의 모범 사례로 꼽힌 오뚜기를 간담회에 초대하고, 중소기업의 수제 맥주를 만찬주로 내놓는 등의 이벤트도 ‘무언의 압박’으로 느끼는 분위기”라며 “각 기업들이 여건이 나아지는 대로 새 정부의 일자리 창출과 상생협력과 관련한 추가 방안을 추진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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