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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코끼리’ 평창 올림픽 경기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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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지한
김지한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지한 스포츠부 기자

김지한 스포츠부 기자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는 레거시(legacy·유산)를 남기는 것이다.”

지난 1월 서울 올림픽 파크텔에서 열린 ‘강원도 평창 겨울올림픽 레거시 심포지엄’에서 팔 슈미트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 한 말이다. 헝가리 대통령을 지냈고 1983년부터 IOC 위원으로 활동 중인 그는 “한국이 평창 올림픽 시설을 포함한 유·무형 자산의 가치를 활용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바란다”고 조언했다.

197일 뒤 개막할 2018 평창 겨울올림픽은 99년 평창 유치 도전을 선언한 뒤 두 차례 실패 끝에 어렵게 유치한 대회다.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는 긴 준비시간이 있었지만 ‘대회 이후’에 대한 고민이 과연 있었나 싶다.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 등 경기장 세 곳은 아직도 사후 활용 방안을 정하지 못했다. 635억원을 들인 평창 올림픽 플라자는 올림픽과 패럴림픽 개·폐회식이 열리는 나흘만 쓰고 부분 철거한다. 강원도 측은 “사후 활용 방안이 수시로 바뀐다. 자세한 건 연말께 결정 날 것 같다”고 말했다. 오래전 끝냈어야 할 고민이 지금도 진행 중이라는 얘기다.

오는 9월 완공되는 평창 올림픽 플라자. 올림픽 때 나흘간 사용한 뒤 부분 철거한다. [평창=김경록 기자]

오는 9월 완공되는 평창 올림픽 플라자. 올림픽 때 나흘간 사용한 뒤 부분 철거한다. [평창=김경록 기자]

평창 올림픽 개막 200일을 앞두고 경기장 사후 활용 문제를 짚은 본지 시리즈 기사에 쏟아진 반응은 뜨거웠다. ‘감당도 못하면서 왜 일을 벌였나’ ‘눈덩이 같은 빚더미가 벌써 걱정스럽다’ 등등 부정적인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렇지 않아도 최순실 국정 농단의 여파가 일부 미친 평창 올림픽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있는데, 개막도 하지 않은 올림픽의 폐막 이후가 크게 걱정스럽다.

강원도는 “88 서울 올림픽 경기장처럼 국민체육진흥법을 개정해 중앙정부 차원에서 사후 관리를 맡아 달라”고 한다. 만약 강원도의 요청을 정부가 수용한다면 메가 스포츠 이벤트를 개최한 뒤 경기장 사후 활용 문제로 고민 깊은 인천(2014 아시안게임)이나 대구(2011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가만히 있겠는가.

대규모 스포츠 이벤트를 치른 뒤 쓸모없이 남은 ‘애물단지’ 경기장을 흔히 관리비 많이 들어가는 ‘하얀 코끼리(white elephant)’에 비유한다. 하지만 불교의 ‘하얀 코끼리(白象)’는 모든 힘의 원천이자 덕을 상징한다.

올림픽이 끝난 뒤 평창과 강릉의 경기장은 어떤 하얀 코끼리가 될 것인가. 올림픽의 진정한 성공 여부는 대회 기간의 원활한 운영뿐만 아니라 그 이후 우리 손에 스포츠 유산을 쥐느냐 빚더미를 쥐느냐에도 달렸다.

김지한 스포츠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