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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권침해 학생 강제전학 보낼 수 있다면? ..법 개정 두고 찬반 팽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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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은 학생에게 교권 침해를 당할 때 가장 큰 정신적 충격을 받는다고 호소한다. 하지만 학생으로부터 교권침해를 당하는 교사 수는 매년 늘고 있는 상황이다. 사진은 해당 기사와 관련 없음. [중앙포토] 

교사들은 학생에게 교권 침해를 당할 때 가장 큰 정신적 충격을 받는다고 호소한다. 하지만 학생으로부터 교권침해를 당하는 교사 수는 매년 늘고 있는 상황이다. 사진은 해당 기사와 관련 없음. [중앙포토] 

지난달 21일 대전의 한 중학교 1학년 교실. 남학생 여럿이 수업 중인 30대 여교사를 쳐다보고 키득거리며 제 자리에서 자위 행위를 했다. 교사는 수업 후 이 사실을 학교에 알렸다. 조사 결과, 학생 11명이 이번을 포함해 다섯 차례 이런 일을 교실에서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학생들은 닷새 동안 특별교육을 받았다. 피해 교사는 정신적 충격 때문에 수업을 중단하고 심리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현재 이전과 같이 해당 학생들 앞에서 수업을 하고 있다.

5년간 교권침해 신고건수만 3만건 달해 #욕설 등 폭언이 62%, 폭행도 507건 #교사에게 폭언·폭행한 학생은 학교 남고 #피해당한 교사가 전근가는 경우 잦아 #2월 국회서 '교원지위향상법' 개정안 발의 #교권을 침해한 학생 강제전학 가능토록 #교사 "교권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 조치" 환영 #학부모 "무조건적인 강제전학이 능사냐" 반발

20대 후반 여성인 고교 교사 김모씨는 지난해 4월 수업을 하다 심하게 떠드는 남학생에게 여러 차례 주의를 줬다. 하지만 이 학생은 아랑곳하지 않고 더 크게 떠들었다. 교사가 다른 학생들의 공부에 방해된다고 판단해 복도에 나가 있으라고 지시했다. 학생은  교사를 한참 노려보다 복도로 나갔다. 학생은 잠시 뒤 교실 창문을 열고 “선생이 ×가지 없다”며 욕을 퍼붓고 교사를 향해 교과서를 던졌다. 책 모서리가 교사 얼굴에 닿아 피가 흘렀다. 피를 닦으려 교사가 고개를 숙인 사이에 학생은 교실로 뛰어들어와 교사의 머리를 가격했다.
 김 교사는 학생을 폭행 혐의로 고소했지만 “어린 학생의 미래를 생각해달라”는 주변 설득에 고소를 취하했다. 하지만 이 학생과 학교에서 마주칠 자신이 없어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갔다.

 교실에서 학생에게 성희롱이나 폭행을 당하는  교사가 늘고 있다. 교육부가 조훈현 의원실에 제출한 ‘교권침해와 피해 교원에 대한 조치 현황’ 조사 자료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5년까지 교사가 학생·학부모로부터 폭행·폭언·성희롱 등 교권침해를 당해 신고한 건수는 2만9597건에 달한다.

 이 중 욕설 등 폭언이 1만8346건(61.9%)으로 가장 많고, 폭행 507건(1.7%), 성희롱 449건(1.5%)이었다. 수업 중 큰 소리로 떠들거나 교사에게 야유를 퍼붓는 식의 ‘수업 진행 방해’는 6224건(21%)이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하지만 정작 교권을 침해한 학생은 학교에 남고, 피해를 입은 교사가 자의반 타의반으로 다른 학교로 전보를 가는 것이 학교가 처한 현실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교권침해를 당한 피해교사 1789명 중 76%인 1364명이 해당 학교를 떠나는 전보 조치를 받았다.

 이는 교권을 침해한 학생으로 하여금 다른 학교에 옮기게 강제할 수 있는 법규가 없기 때문이다. 현행 ‘초중등교육법’과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이하 교원지위향상법)’ 등에는 교권을 침해한 학생에 대해 강제전학 처분을 내릴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

 최근의 대전 중학교 남학생 집단 자위 사건으로 계기로 교권 침해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2월 교권침해 학생을 학교폭력 가해학생과 마찬가지로 전학 조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으로 발의된 교원지위향상법 개정안이 관심을 얻고 있다. 법안 발의 이후 5월 대선과 새 정부 출범, 이후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등의 정치 일정 때문에 법안심사소위 일정으로 미뤄져 왔다.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조훈현 자유한국당 의원은 "이번 사건으로 교권 침해 방지에 대한 공감대가 모아진 만큼 조속히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무너지고 있는 교단의 현실을 감안할 때 교사의 교육권과 학생의 학습권을 보호하고 교권이 바로 설 수 있도록 교원지위향상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하지만 법 개정을 놓고 교사와 학부모들 사이에 논란도 적지 않다. 일단 상당수 교사들은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 김재철 대변인은 “현장 교사들이 느끼는 교권침해는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고 전했다.

 서울의 한 일반고 교사는 “교사들이 가장 큰 충격을 받는 시점이 학생에게 교권침해를 당했을 때”라며 “나 역시 학생을 꾸짖은 뒤에 ‘어디 마음대로 한번 해봐라. 그래봐야 나 못 자르는 거 알고 있다’는 반말 카톡을 받고 병가를 낸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강제전학 등 학생들을 제도적으로 제재할 수 있게 되면 교권 보호에 조금은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또 한 중학교 교사는 “학교에서 교사를 ‘스승’으로 인정하는 분위기는 사라진지 오래다. 학생들이 교단에 선 교사를 집단적으로 조롱하고 야유하는 일도 이젠 흔한 일이 됐다”며 “법 개정은 교사를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하는 것일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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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법을 개정해도 실효성이 없을 거라 지적하는 교사도 적지 않다. 조기성 인천하늘고 교사는 “강제전학 처분을 실행에 옮길 교사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권침해를 당한 교사가 학생을 강제전학 보내게 되면 오히려 이중고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는 게 이유다.

 조 교사는 “교사가 자신의 교권을 침해한 학생을 강제전학 보내게 되면 스스로 권위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괴감에다 학생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더해져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라며 “오히려 교사들에게 외면받아 무용지물 법안이 될 가능성도 높다”고 말했다. 권영부 서울 동북고 교사 역시 “강제전학을 보낸다고 해서 학생이 반성하는 게 아니다. 교권을 강화하는 게 아니라 교사에 대한 반감만 키우는 미봉책”이라고 지적했다.

 학부모들의 반발도 적지 않다. 최미숙 학교를사랑하는학부모모임(학사모) 상임대표는 “학생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교사는 이를 바로 잡아줘야 하는 사람이다. 교사가 문제 학생을 훈육하는 대신 강제전학을 보내 학교에서 자꾸 배제하는 게 바람직한 교육이냐”고 비판했다.

 학교폭력 전문인 전수민 변호사도 “‘교권침해’라는 개념이 모호해 남용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교권침해의 법적 의미를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은 채 법안만 개정되면 학교와 교사는 평소 문제를 일으키던 학생을 교권침해로 엮어서 학교에서 쉽게 내보낼 수 있게 된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채홍준 교육부 교원정책과장은 “교원지위향상법 개정은 교권침해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현실을 고려해 교사를 보호하고 가해 학생을 교육하기 위한 수단으로 꼭 필요한 일”이라며 "강제전학이 오남용되지 않도록 보완책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박형수·이태윤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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