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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에 기여할 인재 육성" 선친 뜻 따라 43년째 장학생 지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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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1호 20면

[BIZ STORY]2대째 '밴 플리트 상' 받은 최태원 SK 회장

최태원 SK 회장이 지난 18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밴 플리트상을 수상한 뒤 토마스 허바드 코리아소사이어티 이사장(오른쪽), 토마스 번 코리아소시어티 회장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 SK그룹]

최태원 SK 회장이 지난 18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밴 플리트상을 수상한 뒤 토마스 허바드 코리아소사이어티 이사장(오른쪽), 토마스 번 코리아소시어티 회장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 SK그룹]

“아버지께선 매년 유학을 떠나는 장학생들을 회장실로 불러 점심으로 우거짓국을 함께 드시곤 했다. 그릇에 직접 고기를 듬뿍 넣어 준 뒤 ‘잘 먹는 미국 학생들과 경쟁하려면 체력이 중요해’라고 말씀하셨다. 귀국한 장학생들과 소프트볼을 함께하며 땀을 흘리거나 이천 농장으로 가족들을 초청해 홈커밍데이를 열기도 하셨다. 나도 식사나 홈커밍데이에 참석하곤 했다. 장학생 한 명이 ‘왜 지원하느냐’고 묻자 아버지께선 ‘대한민국의 지성을 위해서’라고 답하셨다. 누군가가 지성을 키워 천장을 높게 끌어 올리면 그만큼 대한민국이 발전한다는 말씀이셨다.”

유학 지원으로 박사 697명 배출 #부시 가문과 함께 2대째 수상 #도시바 인수 “뜻 있는 곳에 길 있다” #한류 콘텐트 등 ‘딥 체인지’도 모색

지난 18일 ‘밴 플리트 상’을 받은 최태원(57) SK그룹 회장은 “선친이 일궈 놓은 업적을 이어받은 제가 작고 보잘것없는 공으로 상을 받아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이날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코리아 소사이어티 창립 60주년 기념 만찬 행사에서 최 회장은 한미 우호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선친인 고(故) 최종현 회장에 이어 2대째 밴 플리트상을 받았다. 최종현 회장은 지금으로부터 43년 전인 1974년 사재를 출연, 한국고등교육재단(KFAS)을 설립했다. 아들인 최 회장도 1998년부터 19년째 KFAS 이사장을 맡고 있다. 장학 사업을 통해 지금까지 박사학위 소지자 총 697명을 배출했다. 이 가운데 546명이 미국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수상 연설에서 ‘음수사원(飮水思源)’이라는 고사성어를 언급했다.
“음수사원은 ‘우물 물을 마실 때 우물을 판 사람의 수고를 생각하라’는 뜻이다. 상을 받은 영광을 선친께 돌린다는 의미다. 선친은 자원이 부족한 대한민국이 일류국가가 될 길은 인재양성밖에 없다는 신념 아래 해외유학이 생소하던 시절부터 유학생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당시 한국 국민에게 미국은 그저 크고, 힘 있고, 먼 나라였다. 그 강대국으로 학생을 선발해 유학을 보낸다는 것 자체가 파격적인 일이었다. 75년 10명에 불과했던 장학생 규모가 지금은 3500명이 될 정도로 풍성하게 커졌다.”

밴 플리트상은 한국 전쟁 당시 미 8군 사령관으로 부임해 전선을 이끌었던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의 이름을 따 1995년 제정됐다. 매년 한미 상호 이해와 우호 증진에 노력한 개인과 단체에 상을 준다. 최 회장은 98년 이 상을 받은 최종현 회장에 이어 2대째 수상하게 됐다. 앞서 이건희 삼성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등이 밴 플리트상을 받은 적이 있지만, 부자(父子)가 수상자로 선정된 건 처음이다.

-다른 재단과 달리 KFAS에는 그룹명이 들어가지 않는다.

고 최종현 회장이 87년 한국고등교육재단 출신 장학생들과 소프트볼을 하고 있다. [사진 SK그룹]

고 최종현 회장이 87년 한국고등교육재단 출신 장학생들과 소프트볼을 하고 있다. [사진 SK그룹]

“생전에 선대 회장께서는 장학생들에게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배운 지식과 지혜를 국가와 사회를 위해 사용해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SK를 위해 써 달라는 말씀은 절대 하지 않으셨다. 되려 SK에 입사하려면 장학금을 주지 않겠다고 할 정도였다. 재단 이름에서 그룹 이름을 뺀 것도 그 분의 뜻이다. 나도 지난달 장학생들과 식사를 같이 하면서 ‘학업을 마치고 돌아와도 재단이나 SK 대신 대한민국과 시민 사회에 자발적으로 기여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런 것들이 유학생들과 한국 사회 전체의 행복을 더 키워 주기 때문이다.”

최종현 회장은 50년대 미국 시카고대 유학 시절 겪은 뼈저린 경험에서 인재 양성의 필요성을 체감했다. 1인당 국민소득이 80달러에 머물던 시절 미국에서 접시를 닦고 골프장에서 일하며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결국 우수한 인재 밖에 답이 없는데 이들을 지원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굳혔다. 1973년 창업주 최종건 회장의 타계로 그룹 경영권을 물려받은 최종현 회장은 이듬해 KFAS를 설립하게 된다. 공교롭게 오는 9월 뉴욕 연례만찬에선 조지 W 부시(아들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밴 플리트상을 받는다. SK가(家)와 부시가에서 대를 이어 밴 플리트상 수상자가 나오는 셈이다.

이날 수상식을 마친 뒤 SK 그룹의 비즈니스 현안에 대해서도 문답이 이어졌다. SK하이닉스는 일본 반도체 업체 도시바메모리의 지분 인수에 나선 상황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달 2차 입찰 직전 일본산업혁신기구(INCJ), 미국 사모펀드 베인캐피털이 주도하는 미·일 연합에 합류했다.

도시바는 한·미·일 연합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이에 미국 반도체 업체 웨스턴디지털(WD)은 국제중재재판소(ICA)에 도시바 메모리 매각을 막아 달라고 요청한 데 이어 지난달 14일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고등법원에 매각중단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인수 협상이 난항을 겪는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솔직히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엉켜 있다. 소송만 3건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고 각각의 결과에 따라 인수 조건이 달라진다. 그렇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 도시바와 SK하이닉스는 좋은 상생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내 믿음이다. 그런 믿음에 따라 추진하겠다.”

이날 수상식에 함께 참석한 최 회장의 동생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도 “급한 건 SK가 아니라 도시바 쪽”이라며 “(도시바를) 살 곳은 결국 우리 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 SM엔터테인먼트와 손잡고 한류 콘텐트 분야에도 진출했다. 미래 전략을 어떤 방향으로 준비하고 있는지.
“SK가 하이닉스를 인수할 당시 우려가 얼마나 많았느냐. 그렇지만 결과를 보자. 지난해 SK그룹의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수출은 17조원으로 하이닉스 편입 이전인 2011년(수출 규모 1300억원) 대비 127배 늘어났다. 내수 기업에서 SK하이닉스 인수로 내수 기업에서 수출 기업으로 변신할 정도로 중추 사업이 된 것이다. 이처럼 환경이 변하면 돈 버는 방법도 바꿔야 하는데 과연 우리는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팔지’ 같은 사업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충분히 고민해 봤는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변화하지 않는 기업에게는 서든데스(Sudden Death, 급사)가 올 수 있다. SK는 모든 분야에서 ‘딥 체인지(근본적인 변화)’에 나설 것이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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