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휴가 가면 되레 가산점 주는 정부기관 늘고 있어”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41호 12면

저출산 한국과 닮은꼴, 대만의 해법

대만 위생복리부 왕청시 사무총장은 지난 13일 “일하는 여성들이 아이를 편하게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저출산 문제의 근본적 해법”이라고 말했다. 김경빈 기자

대만 위생복리부 왕청시 사무총장은 지난 13일 “일하는 여성들이 아이를 편하게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저출산 문제의 근본적 해법”이라고 말했다. 김경빈 기자

2010년 경인년(庚寅年). 호랑이 띠 해였던 이해 대만의 합계출산율(TFR, 여성 한 명이 평생 낳는 아이 수)은 0.89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12간지 중 호랑이 띠에 태어난 아이는 성격이 사납다’는 대만 민간 속설의 영향이 컸다.

대만 지난해 출산율 1.17명 #2060년엔 노동인구 20% 감소 #여성의 일과 가정 양립 지원 #가족적 분위기 보육시설 확충

하지만 이 수치가 대만 사회에 준 충격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같은 속도로 출산율이 감소된다면 2022년 인구 증가율이 ‘0’이 된다는 결과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1951년만 해도 대만의 합계출산율은 7.04명에 달했다. 산아 제한을 통해 인구수를 줄이는 방안이 정부 정책으로 추진될 정도였다. 하지만 반세기 만에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감소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상했다.

2년 뒤인 2012년은 대만 국민들이 아이 낳기를 선호하는 용띠 해였지만 큰 변화는 없었다. 합계출산율 1.27명으로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대만 당국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범정부적 대책 마련에 나섰다.

그 후로 5년. 대만 정부의 저출산 극복을 위한 정책의 효과는 어땠을까. 지난 13일 서울 중구 라마다 호텔에서 대만 위생복리부 왕청시(52) 사무총장을 만났다. 대만 정부의 저출산 관련 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그는 이튿날 열린 중앙일보 주최 ‘저출산 정책 국제포럼’ 참석차 방한했다.

한국과 대만은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1.17명으로 같다.
“양국 상황이 매우 비슷하다고 본다. 범유교 문화권에 속하고 작은 영토에도 불구하고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뤄낸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다. 최근엔 저출산 문제에 시달린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이 많다.”
대만은 어느 정도로 심각한가.
“내가 어렸을 때인 1980년대만 해도 아이를 두 명만 낳자는 게 정부 정책이었다. 우리 어머니 세대는 3명만 낳자는 얘기를 했다. 그런데 불과 몇 십 년 만에 합계출산율이 1명 안팎으로 줄었다.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게 교육 현장에서의 변화다. 학교에서 학생이 줄자 반을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선생님들이 줄줄이 직업을 잃고 있다. 이대로 가면 2060년에는 현 노동인구보다 20%가 줄어든다는 예측까지 나왔다. 위기감이 크다. 하지만 지나치게 부정적일 필요는 없다. 아주 눈앞에 닥친 위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선제적으로 대응하면 된다. 현재 추진 중인 정책들이 점차 효과를 낼 것이라 본다.”
어떤 정책이 있나.
“세 가지 차원에서 노력을 하고 있다.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게 하는 정책, 육아 관련 보호자 지원 정책, 아이를 맡길 수 있는 보육시설을 확충하는 정책이다. 가장 중요한 건 여성들이 일하면서 어떻게 아이를 키울 수 있게 하느냐다. 대만은 여성 노동력이 많다. 40% 정도의 여성이 일한다. 그러다 보니 출산을 하면 일할 수 없게 되는 문제,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는 문제 등이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다. 이 부분에 있어서 우선 여성과 출산에 우호적이지 않은 문화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어떤 문화가 문제인가.
“나도 아이가 둘 있는데 사회 초년병 시절 출산휴가를 두 차례 썼다. 그런데 연말 평가에서 두 번 다 부정적 결과를 받았다. 사실 이런 식으로 직장에서 출산을 꺼리게 만드는 분위기를 조성하면 누가 아이를 낳으려고 하겠나. 그래서 정부 기관에서부터 출산ㆍ육아휴직 시 불이익을 주지 않도록 문화를 바꾸고 있다. 오히려 가산점을 줘 더 나은 평가를 하는 기관도 있다. 법제화를 한 것은 아니지만 정부 기관에서 바꾸니 민간으로 그런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보육시설은 어떻게 하나.
“일반 유치원과 다르게 보다 가족 같은 분위기의 가정 보육시설을 늘리고 있다. 유치원은 교육 위주 프로그램으로 구성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거부감을 느끼는 아이들이 있다. 그래서 보다 가정과 비슷한 느낌을 줄 수 있는 보육시설을 확충하고 있다. 또 노인들이 아이를 돌볼 수 있게 하는 정책도 추진 중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머무는 경로당에서 자원봉사자를 모집해 초보 부모들에게 자기 지식을 전수해 주고 나중에 가정을 방문해 육아를 도와주게 하는 형태를 생각하고 있다.”
또 다른 지원 정책은.
“저자녀 오피스라는 정부 기구를 만들어서 지원정책을 총괄하고 있다. 모든 출산·육아 서비스를 찾아볼 수 있는 ‘아이 베이비 인포메이션’이라는 웹사이트도 만들었다. 정부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받을 시기가 오면 잊지 않도록 연락해주는 일도 한다. 아동과 출산 여성에 대한 의료서비스도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향후에는 산후우울증에 걸리는 여성들을 무료로 치료하는 지원책을 도입할 계획이다.”

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