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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호 한투증권 사장, 초대형 IB 도전 "치우치지 않게 증권사 본질에 충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조현숙 기자의 CEO와 차 한 잔]

"잃어버린 투자자 신뢰 되찾지 않으면 앞으로 큰 위기" #카카오뱅크 신개념 판매 채널, 협업 기대 #해외 진출 30~50년 성패 갈리겠지만 '선택 아닌 필수'

2007년부터 올해까지. 코스피가 2000에서 2400까지 달려오는 데 걸린 시간이다. 400포인트 올라서는 데 10년 넘는 세월이 흘렀다. 하루하루가 다른 증권업계에서 최고경영자(CEO) 한 자리에서 이 시간을 보낸 이가 있다. 유상호(57) 한국투자증권 사장이다.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한국투자증권 본점에서 유 사장을 만났다. 바로 일주일 전인 7일 한국투자증권은 금융위원회에 초대형 투자은행(IB) 인가 신청을 했다.

-초대형 IB 영역에 도전했다. 기대하는 점은 무엇인가.

“증권사가 주식 거래로 벌어들이는 수익은 정체 내지는 감소할 수밖에 없다. 옛날엔 주식위탁매매 수수료 수익 비중이 50%를 넘었다. 이젠 3분의 1 이하로 줄었다. 대형 증권사를 놓고 보면 IB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수익 구조를 갖췄다. 한국 자본시장의 규모도 양적으로 커졌다. 대형 증권사의 체질이 바뀌었다. 올해 역대 최고의 이익이 가능하다고 보는 이유다. 발행어음 업무까지 인가받게 되면 새로운 수익원이 생기게 된다. 그런 기대감이 (역대 최고 이익 전망에) 녹아있는 거 아닌가 한다.”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이 14일 여의도 본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이 14일 여의도 본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동시에 5개 증권사가 초대형 IB 신청을 했다. 한정된 발행어음 시장을 놓고 과당 경쟁이 일어날 것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발행어음 업무를 놓고 봤을 때 자본금을 4조원이라고 가정하면 최대 8조원을 발행할 수 있다. 자본금 6조원이라면 12조원까지 가능하다. 한국 전체 금융시장을 놓고 봤을 때 큰 규모가 아니다. 바로 한도를 다 채우는 것도 아니다. 발행어음이 그만큼 팔려나가야 하고, 또 발행어음으로 충분히 운용할 만한 딜(거래)이 있어야 한다. 점진적으로 (발행어음 규모가) 늘어날 것으로 본다. 게다가 수수료를 깎아가며 과당 경쟁을 할 시장이 아니다. 파는 게 문제가 아니고 잘 운용해야 팔리는 시장이다. 예를 들어 시중금리가 2%인데 2.5%면 고객이 만족하겠나. 안정적으로 운용하는 게 우선이다. 자금 조달의 경쟁이 아니라 운용의 경쟁이다. 기업 여신을 활용하면서 각 회사마다 좋은 투자 대상을 찾아오느냐의 경쟁이다. 이런 경쟁이 국가 경제에 부정적으로 작용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기업에게 자금 공급의 선순환과 성장을 유도해나는 것이다. 시장이 우려할 점은 없다고 본다.”

-결국 이것도 미국ㆍ유럽식 IB로 가는 과정이라고 본다. 업무 영역을 확대해 나가는 과정에서 어떤 개성, 차별점을 찾아나가느냐가 중요할텐데.

“이미 차별화는 진행이 되고 있다. 일단 IB란 본질에 충실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자산 관리, 브로커리지(위탁매매), 트레이딩 등 모든 부분을 균형있게 키워나가면서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려고 한다.”

-카카오뱅크 얘길 안할 수 없다. 한국투자증권의 지주사인 한국투자금융지주가 카카오뱅크의 최대주주다. 어떤 협업을 기대하나.

“카카오뱅크를 직접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말할 순 없지만 당연히 큰 관심사다. 카카오뱅크는 새로운 종류의 금융 채널이긴 하지만 결국 은행이고 판매 채널이다. 온라인으로 판매가 이뤄지는 채널이다. 예금부터 주식, 채권까지 다양한 금융상품이 있다. 한국은 저성장기에 접어들고 있고 오랜 기간 저금리 시장에 머물고 있다. 결국은 국내든 해외든, 주식ㆍ채권ㆍ부동산이나 대체 투자든 중위험 중수익 상품을 다양하게 공급해주는 게 관건이다. 결국 우리의 역할은 다양한 상품을 만들고 뿌려주는 역할인데 그 채널로서 카카오뱅크가 상당한 역할을 해줄 것이라 기대한다.”

-카카오뱅크 출범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상품을.

“일단 우리 상품을 바로 걸진 않는다. 시간을 두고 할 것이다. 예적금과 대출, 송금 등 서비스가 시작되고 채널이 어떻게 깔리는지를 보고 우리 상품을 가져다 얹을 생각이다.”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이 14일 여의도 본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이 14일 여의도 본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중국 알리바바 산하 위어바오(余額寶)가 단숨에 세계 2위 머니마켓펀드(MMF) 운용사로 떠오르는 등 정보기술(IT)과 은행, 증권, 자산운용의 영역이 점점 허물어지고 있다. 한국도 그렇게 갈 수 있다.

“전세계적으로 유니버셜뱅크(은행ㆍ증권ㆍ보험 겸업) 방향으로 가다가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다시 분업화로 가고 있다. 자본시장은 기본적으로 고위험ㆍ고수익 구조다. 이것은 상업은행의 안정성을 헤칠 수 있다. 한국 금융권에서 중복 업무가 늘어나긴 하겠지만 본질까진 섞지 못할 거다. 다 섞어버리면 큰 위기가 왔을 때 상업은행 기반 자체가 무너지면 경제가 무너진다는 위기감 때문에라도 그렇게까진 안 가리라 본다. 중국의 사례는 좀 다르다. 증권회사가 해줘야 할 기반이 아직 잘 안갖춰져 있다보니 알리바바 같은 회사가 그 역할까지 할 수 있는 것이다.”

-장수 CEO란 얘기를 자주 들을텐데 어떤 생각이 드나.
“집에 가야할 때가 됐나보다.(웃음)”

-1년은커녕 하루가 다른 증권시장이다. 10년 이상을 CEO로 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세월이 참 빨리 갔다. 전 임기가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물론 시작할 때도 이렇게 오래할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고. 임기가 없다고 생각한 것도 내일 그만둬도 좋고, 10년을 하다 그만둬도 좋은 건데. 제가 바라보는 지향점은 30~50년 후에 회사가 어디에 가 있을 거냐다. 그걸 의사 결정의 기준으로 삼았다. 자기 임기가 몇년이냐 생각하면 그렇게 의사 결정을 하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먼 미래를 보고 투자한다는 것은 지금으로 보면 손실이다. 저희가 10여 년 전에 베트남 진출한 것도 30년을 바라보고 한 일이다. 30년이면 제가 여기 있지도 않을텐데. 지금 당장은 비용이겠지만 하나하나 쌓이다 보면 다 신용으로 쌓이고 회사가 발전하고 그런 게 아니였나 싶다. 단기적인 성과에 급급하게 되면 무리를 하게 된다. 외부와 경쟁해야 하는데 내부에서 경쟁하게 된다. 그러면 제대로 조직을 운영할 수 없다.”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이 14일 여의도 본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이 14일 여의도 본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지난 10여 년을 되돌아보면.

“10년을 넘어 11년째에 접어들면서 딱 두 가지 자랑스러운 게 있다. ‘오래 했다’ ‘회사가 돈을 잘 번다’가 아니다. 한국투자증권은 기업공개(IPO)를 제일 많이 한 회사다. 몇 달 전 세어봤다. 주간사로 해서 상장시킨 회사가 제가 취임한 2007년 초부터 올해 3월까지 123개더라. 같은 기간 두 번째로 상장 많이 시킨 증권사가 84개, 3등은 56개다. 차이가 많이 난다. 그리고 두 번째, 세 번째 상장을 많이 한 증권사는 사장이 3~4번 바뀌었다. 1인당 10~20여 개 하고 바뀐 거다. 기업에 양질의 자금을 공급하는 데 힘을 보탰구나 생각하면 뿌듯하다. 지금도 출장 같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IPO를 담당한 기업의 상장 기념식 때마다 한국거래소에 다 가본다.”

-자랑스러운 게 두 가지라고 했는데.

“2012년부터 증시가 위축됐고 2013년부터 증권사가 구조조정을 많이 했다. 2013년 이후 이름만 대면 알만한 증권사 치고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하나도 안 한 회사는 한국투자증권밖에 없을 거다.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빅(Big)4’ 증권사 중 다른 3개사의 신입사원 채용 규모와 비교하면 한국투자증권은 252%다. 남들이 구조조정할 때도 2.5배의 신입사원을 더 뽑았다. 앞에 한 말과 통하는 얘기인데 신입사원을 뽑는 것도 당장으로 보면 투자고 손실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신입사원을 뽑는 이유는 30년, 50년을 바라봐야 하니까. 올해도 채용을 여러 번 했다. 제일 큰 공채도 남았고.”

-증시 그리고 한국 자본시장을 평가하고 전망한다면.

“시장을 예측하긴 어렵지만 때가 된 것 같다. 코스피가 1980년대 100에서 시작해서 횡보를 하다가 86~89년을 전후해서 1000까지 올랐다. 그게 또 십몇 년을 옆으로 기다가 2000년대 중반 들어와서 2000을 갔다. 그리고 10년 이상이 갔다. 이제 점프할 때가 된 것 같다. 하지만 한국 자본시장은 투자자들에게 신뢰를 거의 못받고 있다. 자본시장의 규모나 성장 속도를 볼 때 지금 투자자에게 확실한 신뢰를 쌓지 못한다면 앞으로 큰 위기가 닥칠 거다. 말로만 정도 경영하는 게 아니고 고객의 수익, 고객의 믿음을 기본으로 해서 가지 않으면 여기서 더 성장하기 어렵다. 몇 년 전부터 직원 평가, 지점 평가에 고객 수익률도 넣고 하는 것도 그런 노력의 하나다. 30~50년 내다봤을 때 생존을 위해서 시장을 지키고 살아남기 위해서 필요한 게 아닌가. 그렇게 다짐을 하고 있다.”

-30년, 50년을 바라봤을 때 또 강조하고 싶은 점이 있는지.

“30년, 50년 후를 바라보면 결국은 해외 시장을 어떻게 개척을 할 거냐다. 한국 경제나 시장은 한계가 있다. 한국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나라가 많다. 지금 한국보다 경제 규모가 작더라도 30년 후에 훨씬 커질 나라도 분명히 있다. 10여 년 전 제가 베트남에 발을 들인 이유다. 그런 나라에 가서 자회사를 하나 잘 키우면 그 자회사가 한국의 본사보다 더 크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그리고 그 넘어 국제 금융시장에서 탄탄한 네크워크를 가진 회사가 될 수 있지 않겠나. 물론 해외 진출을 조급하게 서두를 필요는 없다. 몇 년 안에 승부가 나는 게 아니다. 30~50년 후에 승부가 날 것이다. 지금도 국내에서 영업이 대부분 이뤄지고 있지만 상품은 해외 상품으로 점점 다양회 되고 있다. 전세계 네트워크뿐 아니라 본사의 시스템, 운용 방식도 서서히 바꿔나가야 한다. 그래야 30년, 50년 후까지 생존할 수 있다.”

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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