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최저임금 인상에 … 소상공인들 “빚내서 올려주나” 아우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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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장주영산업부 기자

장주영산업부 기자

“빚내서 임금을 올려주란 이야긴가요?”

중기청, 진흥기금 2조 확대 방안에 #업계 “거의 융자 용도” 냉소적 반응 #정부 “추가 부담 15조 안돼” 주장엔 #“임대료·가맹비도 오르는 데 … ” 반발

서울 홍대에서 식당을 운영 중인 박모(45)씨의 말이다. 18일 중소기업청이 발표한 ‘소상공인·영세중소기업 지원대책’ 내용을 두고서다. 중기청은 이날 소상공인시장진흥기금 확대와 적합업종 제도 강화 등 최저임금 인상의 후속 조치 격인 대책을 내놓았다. 16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동일한 내용의 대책에 대한 시행 시기와 목표 등을 구체화한 것이다. 내용을 보면 이렇다. 현재 2조원 수준인 소상공인시장진흥기금 규모를 2022년까지 4조원으로 확충하고 정책자금 대출의 저금리 기조를 현행 연 2.3∼2.7%대로 유지한다. 현재 18조원인 보증지원 규모도 2022년까지 23조원으로 확대한다. 민생에 영향이 큰 생계형 적합업종은 정부가 직접 지정하고, 중소기업 적합업종의 사업조정 권고 기간을 현 3년에서 5년으로 연장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 대책이 영 미덥지 못한 분위기다. 우선 소상공인시장진흥기금을 현재 2조원에서 4조원으로 확대한다는 데 대해서는 박씨와 같은 냉소적 반응이 나온다. 인건비 부담이 늘어나는 데 정부가 5년간 평균 인상률(연 7.4%)에 대한 보조금(3조원)을 지원해주고 그래도 안되는 부분은 기금을 확충해 놓을 테니 빚을 내라는 의미가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소상공인시장진흥기금은 2조원 가운데 육성사업에 쓰이는 돈 일부(4000억원)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융자로 사용되고 있다.

최저임금으로 인한 부담도 정부와 현장의 온도 차가 크다. 중기청은 “업계에서는 최저임금이 7530원으로 인상돼 15조2000억원을 추가 부담해야 할 것으로 추정하나 이는 실제 최저임금을 받는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어서 과다 계산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업계가 5인 이상 중소기업 전체 근로자를 뭉뚱그려 계산 대상으로 삼고, 노동시간(전체 평균 209시간)과 특별급여 비중까지 적용했다는 이유에서다.

중기청 관계자는 “일용직·단기직 근로자까지 주 40시간 근무, 월 209시간 근무로 계산함으로써 불안 심리를 퍼뜨리는 건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시화공단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한 기업인은 “정부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이야기”라고 반박했다. 그는 “최저임금 이하 근로자들의 인건비만 추가 발생한다고 생각하면 그건 오산”이라면서 “형평성을 유지하려면 전체 직원들의 인건비가 올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주장했다.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이 어려운 이유는 오로지 인건비 상승에 대한 압박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도 이점은 이구동성으로 인정했다. 하지만 팍팍한 여건 속에서 ‘인건비마저’ 오르는 상황을 더는 견디기 어렵다는 것이 이들의 이야기였다. 폐업을 고민하는 편의점주는 “인건비 부담만 늘어서가 아니라 치솟는 임대료와 가맹비 부담에 인건비 마저 늘어나서”라고 했고, 고용 감축을 고민하는 중소기업인은 “우리는 좀 버텨보려 해도 협력업체가 벌써부터 ‘납품가격을 올려달라’고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는 공약대로 최저임금 인상을 이끌어냈지만 그걸 전리품처럼 생각해선 곤란하다. 정부도 인정했듯 ‘정부가 민간기업의 임금을 보전해주는 방식은 영원히 가지고 갈 수 없다(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는 사실도 자명하다. “최저임금 인상의 성과보다는 효과를 살펴보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장주영 산업부 기자 jang.joo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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