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끔찍한 거래(horrible deal)”라며 재협상 추진을 천명한 가운데 청와대는 “재협상이 아니다”라고 진화 중이다.
청와대와 여권이 야당 시절인 2008년부터 2011년 한·미 FTA 비준 때까지와는 크게 다른 태도다. 당시 이명박 정부에선 ‘추가 협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 여권인 야권은 ‘재협상’이라고 규정했다. 당시 미국산 쇠고기 등에 대한 여론 악화에 밀려 미국과 협상한 걸 두고 “한·미 FTA 재재협상(재협상에 대한 재협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게 그 예다.
10년 전엔 줄기차게 한ㆍ미 FTA 재협상 요구 #트럼프 미 대통령 "재협상 추진" 언급에 펄쩍 #청와대, "재협상 아냐. '부분 개정'으로 봐달라" #구 여권 인사들, "당시 매국노 취급 사과부터"
2012년 대선 국면에선 한·미 FTA가 우리에게 불리하게 됐다며 우리 측이 재협상을 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냈다. 대선후보이던 문재인 대통령이 “재협상을 통해 불이익을 바로잡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TV 토론에서도 “(2011년 국회 비준 당시) 한·미 FTA에 찬성했는데 재협상 없이 가도 된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며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를 공격했다.
이와 관련해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최소한 민주당과 문재인 대통령은 저에게 사과라도 한마디 하고 한·미 FTA 개정 협상을 시작해야 정치도의에 맞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그는 “2011년 11월 (내가) 한나라당 대표를 할 때, 민주당에서는 (한·미 FTA를) 불공정 협정이고 제2의 을사늑약이고, (저를) 매국노라고까지 비난했다”고 말했다. 또,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거꾸로 미국 측이 불공정 협정이라고 개정요구를 하는 지금 과연 문재인 정권이 이를 어떻게 대처할지 한번 지켜보겠다”고 비꼬았다.
한편 야당도 일제히 문재인 정부의 외교력을 질타했다.
홍문표 자유한국당 사무총장은 14일 원내대책회의에서 “한미 정상회담 외교 문재인 대통령의 성과물을 만들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이라며 “틀림없이 이면 합의가 있었거나 사전 사후에 교감된 일을 성과물에 흠집이 생길까봐 속인 것”이라고 의구심을 드러냈다.
같은 당 이현재 정책위의장도 “이제와 청와대는 관계부처와 함께 향후 대책을 수립하겠다 한다”며 “청와대는 아직 미국의 의도조차 파악하지 못한 것인지, 일부러 감추고 있는 것인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매우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앞서 한·미 정상회담 때도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 도중 FTA 재협상 필요성을 거론한 것에 대해 “한·미 FTA의 상호 호혜성을 강조하면서 양측 실무진이 FTA 시행 효과를 공동으로 분석, 조사 평가할 것을 제의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고 해명했었다.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도 이날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FTA를 재협상 한다고 해서 논란이 된 데 대해 청와대가 재협상에 합의한 적 없다고 강력 부인했었다”며 “이는 청와대가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 홍보에만 치중해 국민을 기만한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이렇게 미국 측 상황과 입장 파악에 소홀한 거라면 문재인 정부의 외교 무능이 드러난 것”이라며 “정부는 지금이라도 양국간 논의내용을 낱낱이 밝히고 이제라도 철저한 대응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과거 한·미 FTA 협상을 이끌었던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미국이 한국을 얕잡아 본다는 식의 오해를 하기 시작하면 우호 관계나 동맹 관계에 별로 장기적인 도움이 안 된다. 이런 인식을 서로 경계해야한다”며 “재협상, 개정이라고 구분하기보다는 오히려 본질을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