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모호한 기자회견…당 안팎에서도 “안 하느니만 못하는 기자회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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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제보조작 사건에 대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의 입장표명은 10분 동안 이뤄졌다. 시간도 짧았지만, 더 문제는 모호한 메시지였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의원이 12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보조작' 사건과 관련해 사과한 뒤 퇴장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20170712

국민의당 안철수 전 의원이 12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보조작' 사건과 관련해 사과한 뒤 퇴장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20170712

 안 전 대표는 회견에서 “이번 사건에 대한 정치적, 도의적 책임은 전적으로 후보였던 제게 있다”며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어떤 식으로 책임을 질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깊은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가지겠다”고만 말했다.
 짧은 질의응답 시간 동안 “어떤 형태로 책임질거냐”,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는 의미가 뭐냐”, “정계은퇴까지 고려하냐” 등 질문이 쏟아졌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모호했다. “모든 역할을 다하겠다”, “어떻게 책임을 질 수 있는지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가지겠다”, “당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정말 깊이 고민하겠다” 등의 답변이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13일 라디오에서 나와 “애매모호한 기자회견이다.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고 했는데 실질적으로 뭘 한다는 것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오죽했으면 당의 한 비례의원조차 “안 전 대표가 ‘모든 역할을 다 하겠다’고 해서 전당대회라도 출마하는 줄 알았다”고 비꼬았다.
 내용도 모호했지만 시기도 놓쳤다는 지적이 많다. 안 전 대표는 “검찰수사가 이미 시작된 상황에서는 사실 관계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입장표명이 늦어진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안 전 대표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동안 국민의당의 지지율은 곤두박질쳤다. 안 전 대표의 측근들 사이에서도 “사과는 우리쪽이 해야하는데 엄하게 현 지도부가 고생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침묵을 지키던 안 전 대표가 최초로 대중에게 목격된 건 10일 강원도 속초의 생선찜 전문점이었다. 네티즌들로부터 조롱거리가 된 건 물론이다.
 안 전 대표에게도 어려움은 있었을 것이다. 안 전 대표는 지난해에는 당 대표직을 내려놨고, 대선 기간 중에는 국회의원직을 사퇴했다. 그에게 더 내려놓을 것은 탈당이나 정계은퇴 밖에 없다. 하지만 안 전 대표를 잘 아는 관계자들은 “안 전 대표는 자신이 뛰어든 분야에서 성공을 거둘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정치도 마찬가지다. 말을 잘 바꾸지 않는 그의 성격상 정계은퇴라는 말은 진짜 정치를 그만둔다는 뜻이기에 함부로 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전 대표는 그동안 정치를 하며 책임을 중요한 덕목으로 내세웠다. “정치는 좋은 의도보다 좋은 결과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나쁜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지는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 위기의 본질은 책임지지 않는 데 있습니다. 제대로 책임지지 않으면 똑같은 위기가 반복됩니다.” 그가 지난 3월19일 대선 출사표를 던지며 꺼낸 말이다.
 그렇다면 국민의당과 안 전 대표 자신은 제대로 책임을 졌을까. 국민의당은 제보조작 사건을 이유미(38ㆍ구속)씨의 단독범행에 방점을 찍은 채 설명해왔다. 당의 검증 소홀과 무분별한 네거티브 공세에 대한 반성은 찾기 힘들었다. 안 전 대표는 지난해 당 홍보비 리베이트 사건 때 당 대표직을 내려놓은 후 당이 지향할 가치를 세우고 튼튼한 당 시스템을 만드는 작업은 박지원 전 대표 등에게만 맡긴 채 외면했다. “제보조작 사건은 당 시스템과 역량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김태일 당 혁신위원장)이라는 내부 진단이 나온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새 정치를 내세우며 정치에 뛰어든 안 전 대표다. 새롭지도 않으며 시기도 뒤늦은데다 책임에 대해서도 애매하게 대처한 안 전 대표의 기자회견을 보며 쓴 맛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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