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시론

문제 해결 능력 없는 우리나라 성인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김용성 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용성 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보던 기술이 우리의 일상과 일자리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일자리 10개 중 6개는 향후 30년 내 로봇과 기계에 의해 자동화될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현실에서 사라질 일자리에 대한 걱정보다는 새 일자리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철저한 준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래 핵심 경쟁력은 문제 해결 능력 #한국 성인, 이 부문 세계 최하위권 #상명하복 직장문화, 고용 불안정이 #성인 자기계발 능력 저해하는 주범

장기간에 걸친 일자리 변화를 살펴보면 미래의 일자리 모습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1960년부터 2009년까지 직업 변화를 분석한 연구는 단순 반복적 작업은 점차 감소해 20% 정도 준 반면 주어진 틀에 맞추기 힘든 추상적·분석적 능력과 대인관계를 중시하는 일자리는 약 30% 증가했음을 보여 준다. 최근 각국의 기업 대상 설문조사에선 미래 인재의 핵심 역량으로 지적 능력, 비판적·창의적 사고, 협동과 소통, 설득과 타협 등을 꼽는다. 다양한 방법을 사용해 업무를 수행하는 이른바 ‘문제 해결 스킬’이다. 일자리도 이런 능력을 요구하는 형태로 바뀔 것이 분명하다.

우리나라 성인들은 과연 이런 추세에서 경쟁력이 있을까. 비관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의 한국 성인 역량을 보면 읽기(16위), 쓰기(14위), 수리(11위), 정보통신기술(ICT) 스킬 활용도(17위) 면에서 조사 대상 33개국 중 우수한 편이었다. 하지만 유독 ‘미래 경쟁력’이라는 문제 해결 스킬의 활용도는 29위로 최하위권이다. 특히 이를 집중 활용해야 할 고숙련·전문직 분야의 성인들이 다른 나라 비슷한 직종의 성인들과 큰 격차를 보인다.

왜 문제 해결 스킬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는가? 원인은 개인과 직장,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에서 찾을 수 있다. 우선 문제 해결 스킬에 필요한 전문지식을 습득하고 이를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하려는 개인적 노력이 부족하다. 일자리 학습(learning by doing)을 경험한 우리나라 직장인 비율은 OECD 평균(20.8%)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9.7%) 근로자 3명 중 2명은 일자리에서 새로운 것을 배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개인의 낮은 학습 열의가 문제 해결 스킬의 축적 및 활용 부진과 무관치 않다는 얘기다.

수직적 기업문화와 일하는 방식도 문제다. 연구에 따르면 직장 내 의사소통이 활발하고 업무 협력이 원활할수록 근로자가 문제 해결 스킬을 적극 활용했다. 상명하복과 위계 서열이 중시되는 우리나라 직장문화 속에서는 개인의 자유로운 의견과 창의적 발상이 무시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절적 노동시장 구조도 걸림돌이다. 기업은 고용 지속 여부가 불투명한 비정규직 근로자에게 교육 투자와 훈련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 또한 비정규직 근로자는 불안정한 일자리에서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동기가 크지 않다. 실제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교육훈련 격차와 문제 해결 스킬 활용 격차가 모두 크게 나타나고 있다.

문제 해결 스킬을 축적하고 일자리에서 활용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은 문제 해결 스킬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재검토돼야 한다. 주어진 문제를 푸는 방식에서 벗어나 문제를 적극 탐구하고 파악하며 다각적 해결방법을 모색하는 ‘프로젝트 기반 학습’을 장려해야 한다. 또한 급변하는 노동시장에 대처하기 위해 직업교육 및 훈련시스템을 평생교육의 관점에서 재편하고, 교육훈련의 내용으로 전문지식 이외에 의사소통·협동심·협상력 등 대인 스킬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기업문화와 일하는 방식의 개선은 핵심 안건이다. 기업이 다층적이고 수직적인 체계를 수평적 조직으로 개편하고, 상명하달 업무방식에서 양방향 협의방식으로 바꾸는 데 정부가 일정 역할을 할 수 있다. 가령 중소기업의 경우 정부가 경영 컨설팅과 업무 분석을 지원함으로써 현장에서 문제 해결 스킬이 충분히 활용되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 한편 기업은 업무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분명히 함으로써 개인의 의견과 창의성이 충분히 반영되고 각자 원하는 방식으로 업무가 수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끝으로 안정적 고용관계는 근로자의 스킬 향상을 위한 기업 투자를 가능하게 하고, 근로자가 스킬을 최대한 활용하게 만드는 필요조건이다. 따라서 쉬운 해고와 채용처럼 고용 안정성을 훼손하는 노동시장 유연화보다 경기상황에 따라 임금과 근로시간을 조정하는 좀 더 안정적인 고용관계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 이런 방식으로 기업과 근로자가 문제 해결 스킬을 축적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노동시장의 환경을 만드는 데 힘써야 한다.

김용성 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