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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2개월…사자성어로 풀어보는 19대 대선 주자들의 현주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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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9일로 정확히 두 달이 됐다. 5월 9일 대선에서 승리한 문재인 대통령은 직무 수행 지지도 83%(7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로 여전히 고공 비행 중이다. 대선 본선과 예선(당 내 경선)에서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자웅을 겨뤘던 여야 후보들이 처한 정치적 지형은 확연히 달라졌다. 5년 후 20대 대선을 기약하며 조금씩 기지개를 켜는가 하면,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운 이도 있다. 19대 대선 후보였던 여야 유력 정치인들의 현주소를 사자성어로 풀어봤다.

지난달 30일 라마다프라자 제주호텔에서 열린 2017 제8회 제주인권회의 개회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는 안희정 충남 지사. [연합뉴스]

지난달 30일 라마다프라자 제주호텔에서 열린 2017 제8회 제주인권회의 개회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는 안희정 충남 지사. [연합뉴스]

◇‘권토중래(捲土重來ㆍ한번 실패해도 다시 일어나 재기를 꾀함)’ 안희정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문재인 후보의 페이스 메이커로 나온 게 아니다”며 결전 의지를 다졌던 안희정 충남 지사는 끝내 문 후보에 뒤지면서 본선 티켓을 쥐지 못했다. 서양호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은 “‘문재인 대세론’에 맞서 나름 선전했지만 정치 내공의 부족을 절감했을 것”이라며 “5년 후 20대 대선 재도전을 위해 권토중래를 꿈꾸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토중래’ 안희정 #‘기호지세’ 이재명 #‘혁고정신’ 박원순 #‘육참골단’ 홍준표 #‘사면초가’ 안철수 #‘자강불식’ 유승민 #‘이심전심’ 심상정

안 지사는 대선 이후 현재까지는 우선 본연의 도백(道伯) 역할에 집중하고 있다. ‘충남 엑소’라는 별명대로 지역 도민들로부터 후한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갤럽이 7일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올 1~6월 전국 2만3291명에게 거주지역의 시ㆍ도 지사 직무에 대한 평가를 물은 결과 안 지사의 직무 긍정률(‘잘하고 있다’)이 79%로 16개 시ㆍ도 지사 중 가장 높았다.
관심사는 내년 지방선거 때 충청지사 3선 도전하느냐 여부다. 서 소장은 “충남지사 선거에 또 출마하는 것은 정치적 자산의 낭비인 만큼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사퇴한 서울 노원병 선거구 등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통해 중앙정치 무대 입성을 꾀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 지사 본인은 “적절한 때 말씀드리겠다”며 신중한 입장이다.

지난달 20일 성남시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는 이재명 성남시장(가운데). [사진 성남시]

지난달 20일 성남시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는 이재명 성남시장(가운데). [사진 성남시]

◇‘기호지세(騎虎之勢ㆍ이미 시작한 일이라 중도에 그만두지 못함)’ 이재명
대선 때 이슈몰이에 강점을 보여줬던 이재명 성남 시장은 대선 후에도 ‘SNS 정치’ 등 소통에 활발한 모습이다.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유서대필 누명’ 옥살이 강기훈에 국가 등 6억8000만원 배상>이라는 제목의 기사 링크를 싣고는 ‘유서대필 누명…국가의 이 극악무도한 범죄에 대한 배상이 겨우 6억? 이게 나라냐?’고 개탄했다. 문무일 검찰총장 후보자 지명 직후에는 페이스북에 “적폐 청산과 공정국가 건설의 첫 길을 제대로 열어갈 것이라고 믿는다”고 환영 의사를 밝혔다.
대북 경제협력 사업에 강한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지난 6일 성남시 남북교류협력위원회에 참석해 “북한의 지방급 경제특구 현장방문으로 자체 경제협력의 물꼬를 트겠다”고 하면서다.

이 시장의 고민은 내년 지방선거 때 경기지사로 나서느냐, 서울시장으로 나서느냐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이 시장은 우선 체급을 끌어올리는 일이 시급하다”며 “경기지사 출마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예상했다. 이 시장은 지난 6월 “박원순 서울시장이 3선 도전에 나선다면 그와 경쟁하진 않겠다”고 했다.

지난 5일 서울 마포구 창비 서교빌딩에서 열린 한국여성단체연합 30년의 역사 출판기념 북토크를 찾아 참석자들과 인사를 하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 [연합뉴스]

지난 5일 서울 마포구 창비 서교빌딩에서 열린 한국여성단체연합 30년의 역사 출판기념 북토크를 찾아 참석자들과 인사를 하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 [연합뉴스]

◇‘혁고정신(革故鼎新ㆍ옛것을 뜯어고치고 솥을 새것으로 바꿈)’ 박원순
박원순 서울시장은 올 초 새해 각오로 사자성어 ‘혁고정신’을 꺼내들었다. 이후 20여일 뒤인 1월 26일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박 시장의 대선행을 가로막은 건 역시 ‘문재인 대세론’이었다.
낡은 것을 새로 고친다는 각오를 드러냈던 박 시장은 갈림길에 놓여 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3선에 도전하느냐, 아니면 여의도 국회 원내 진입 후 당권 장악 전략을 택하느냐다. 박 시장은 지난 6일 민선 6기 취임 3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시민의 뜻을 따르겠다”고 말했다.

박 시장 주위에선 “서울시장 3선 도전 의지가 확고하다”는 말이 나온다. 익명을 원한 서울시 한 관계자는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전 서울시 정무부시장), 하승창 사회혁신수석(전 서울시 정무부시장), 조현옥 인사수석(전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장) 등 청와대에 ‘박원순 사람’이 많은데 박 시장 입장에선 문 대통령과 파트너십을 유지하면서 서울시정에서 성과를 올리는 게 곧 차기 대권 행보라고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지난 대선 때 당내 부실한 기반 때문에 고전한 기억을 감안하면 국회의원 재보선을 통해 여의도 정치에 뛰어든 뒤 내년 전당대회 때 당 대표직 등에 도전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고 말했다.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 중인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연합뉴스]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 중인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연합뉴스]

◇‘육참골단(肉斬骨斷ㆍ자신의 살을 베고 상대의 뼈를 끊음)’ 홍준표
대선 패배 이후 도미했다가 자유한국당 전당대회를 통해 정치 일선에 복귀한 홍준표 대표는 대표직 취임 일성으로 “단칼에 환부를 도려낼 수 있는 과감한 혁신”을 강조하며 ‘육참골단의 각오’를 다짐했다.

하지만 지난 4일 발표한 당직 인선부터 잡음을 낳고 있다. 사무총장과 전략기획부총장에 각각 임명한 홍문표, 김명연 의원은 ‘친홍(親洪) 인사’로 꼽힌다. 지명직 최고위원에 앉힌 이종혁 전 의원은 홍 대표의 대선 캠프 특보단장 출신이며, 여의도연구원장에 임명한 김대식 서울대 교수는 대선 후보 수행단장 출신이다. 당내에선 홍 대표 독주를 막기 위한 비판과 견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지난 7일 “한 사람이 당의 모든 체제를 지배하는 시대는 지났다”며 “인선을 하거나 주요 결정을 내릴 때 최고위원들을 비롯해 당 내 중진들과 충분한 소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 대표는 당 대표직 당선 직후 “바른정당은 내년 지방선거 전에 (자유한국당에) 흡수될 것”이라고 했지만, 이 역시 녹록지 않다.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는 “막말과 막장 정치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겠다”며 “자유한국당 내에도 우리의 가치 정치에 함께 뜻을 하실 분들은 다들 모시겠다”며 보수 적통 경쟁을 예고했다.

‘문준용씨 취업특혜 제보 조작 사건’으로 정치적 시련을 맞고 있는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사진은 지난 5월 18일 제37주년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모습.[중앙포토]

‘문준용씨 취업특혜 제보 조작 사건’으로 정치적 시련을 맞고 있는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사진은 지난 5월 18일 제37주년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모습.[중앙포토]

◇‘사면초가(四面楚歌ㆍ사방이 적에 둘러싸임)’ 안철수
대선 패배 직후 ‘복기’와 ‘반성’의 시간을 보낸 안철수 전 국민의당대표는 ‘문준용씨 취업특혜 제보 조작 사건’으로 최대의 시련을 맞고 있다. 당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는 당원 이유미씨의 단독 범행이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안 전 대표의 정치적 책임을 묻는 여론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 7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 국민의당은 4%로 5개 주요 정당 가운데 꼴찌를 기록했다. 국민의당 창당 이래 최저 기록이다.

자택에서 칩거 중인 안 전 대표는 제보 조작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가 있을 경우 당일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서 소장은 “안 전 대표는 지난 대선 때 부인 김미경씨의 ‘1+1 서울대 교수 특혜 채용 의혹’에 이어 이번 제보 조작 사건까지 터지면서 자신이 앞세웠던 ‘새정치’ 이미지에 상당한 흠집이 났다”며 “안 전 대표가 내놓을 뾰족한 수습 카드가 없다는 점이 더 문제”라고 말했다.
하지만 안 전 대표 측 한 인사는 “이유미씨 단독 범행이라는 당 진상조사 결과와 검찰 수사결과가 다르지 않을 것”이라며 “안 전 대표가 정치적ㆍ도의적 책임에 대해 유감 의사를 밝힌 뒤 반등의 타이밍을 찾으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3일 오후 국회에서 김세연 신임 바른정당 정책위의장의 취임 소감을 듣고 있는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 &#39;연합뉴스]

지난 3일 오후 국회에서 김세연 신임 바른정당 정책위의장의 취임 소감을 듣고 있는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 &#39;연합뉴스]

◇‘자강불식(自强不息ㆍ스스로 힘쓰고 쉬지 아니함)’ 유승민
19대 대선 때 6.76%의 득표율을 올렸던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은 대선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오늘의 도전은 내일의 희망을 위한 첫 걸음이라 믿기에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에 대한 저의 성찰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적었다. 정치평론가 유창선 박사는 “‘보수의 새 희망’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던 유 의원은 자신과 가까운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를 앞세워 당 기반을 안정화하고 당세를 더욱 키우기 위한 ‘자강(自强)’에 주력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유 의원은 지난달 13일 중앙대에서 ‘청년과 정치’라는 주제로 대선 이후 첫 대중 강연을 했다. 유 의원은 “‘신(新)보수’를 지향하는 바른정당이 나아갈 방향은 ‘구(舊)보수’인 자유한국당과의 완전한 결별”이라며 자강 노선을 재확인했다. 바른정당의 싱크탱크 역할을 할 바른정책연구소(소장 김세연 의원)의 최근 개소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바른정당은 7월 19일부터 ‘참 보수를 찾습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로 대구ㆍ경북(TK)을 시작으로 호남, 경기, 충청, 부산ㆍ경남(PK) 지역 등 전국을 돌며 중도 보수로서 외연 확장을 꾀할 계획이다.

지난 3일 국회에서 열린 ‘터놓고 이야기해요-최저임금 1만원’이란 주제의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 [연합뉴스]

지난 3일 국회에서 열린 ‘터놓고 이야기해요-최저임금 1만원’이란 주제의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 [연합뉴스]

◇‘이심전심(以心傳心ㆍ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이 서로 맞음)’ 심상정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는 19대 대선에서 6.17%로 진보 정당 후보로서는 역대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심 대표는 “기대에 못미쳐 아쉽다”고 했지만 진보정당의 가치와 철학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심 대표는 6월 12일 ‘약속 투어’에서 “문재인 정부는 촛불혁명을 통해 이뤄낸 대선을 바탕으로 인사 흐름이 국민이 원하는 개혁과 적폐 청산의 전체적인 그림을 맞춰가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정치평론가 이종훈 경희대 객원교수는 “정의당이 민주당과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개혁을 함께 견인하는 모습”이라며 “현재까지는 정의당의 마음(心)이 문재인 정부의 마음(心)과 어느 정도 통하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심 대표 앞에 놓인 최우선 과제는 진보 정당의 대중적 기반을 넓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심 대표는 대선 직후 한 달 간 일정으로 전국 순회 ‘약속 투어’를 진행했다. 대선 때 응원을 보낸 지지자와 국민들을 만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대선 약속을 반드시 이행하겠다는 다짐의 성격이었다. 정의당 한 관계자는 “심 대표는 사회적 약자, 소수자의 목소리를 정치로 이끌어내는 활동을 앞으로 계속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구 기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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