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시론

투기꾼은 부동산 가격 폭등의 원인이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이병태 KAIST 경영대학 교수

이병태 KAIST 경영대학 교수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치솟는 아파트 가격에 대해 투기꾼과 편법 상속을 도모하는 자들의 소행이라며, “아직도 과열의 원인을 공급 부족에서 찾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공급 부족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틀렸다고 강변하며 경고하고 있다.

부동산 가격 폭등하는 건 #가격이 오를 가능성 때문 #시장 적대시하고 도덕을 #앞세운 정책은 실패한다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투기꾼들이 과열을 불러온다는 주장은 경제의 기본 원리를 이해 못한 데서 나온 것이다. 만약 아파트 가격이 안정되고 낮아질 것을 예상한다면 다량의 부동산 구매는 패가망신할, 위험하고 바보스러운 투자가 된다. 결국 부동산 가격의 상승 가능성이 투기꾼을 만드는 것이지 투기꾼이 부동산 가격을 폭등시키는 원인은 아니다.

만약 김 장관이 말하는 투기적 수요가 없으면 시장이 안정되고 효율적 시장이 되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실수요자들 또한 미래 부동산 시장의 불확실성에 대해 고민을 하면서 가격이 하락할 것이라고 판단하거나, 금리가 높아 주택 소유가 벅찰 경우는 수요로 전환되지 않는다. 그러면 공급은 줄어들거나 멈추게 된다. 보수적인 일반 수요자들이 청약을 미루는 사이에 투기꾼, 즉 미래 부동산 시장에 대해 긍정적 신호를 먼저 읽은 이들이 보험적 투자를 감행하기 때문에 공급이 진행되는 긍정적 효과가 있는 것이다. 즉 위험이 큰 시장에서는 수요와 공급의 단기적 불일치가 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모험적 투자가 이 불일치를 줄이는 역할도 한다.

수요자의 수요를 확인하는 청약에 기반한 우리 건설업계가 미분양 아파트로 수년간 아파트 공급이 부진했고, 금리가 워낙 낮아 구매가와 전세의 격차가 줄어드니 수요가 늘 것이라는 흐름을 읽은 모험 투자자들, 즉 투기꾼들은 결국 수요가 부족하다는 시장의 흐름을 먼저 읽은 사람들로 국토부 장관보다 현명한 사람들일 가능성이 크다.

소수의 투기꾼들이 아파트 시세를 올린다는 주장도 경제 지식을 의심하기에 충분한 주장이다. 아파트를 여러 채 소유한다고 해서 주인이 다량의 주택에서 살 수 없다. 결국 전·월세를 통해 시장에 나오게 되고 이런 물량이 많으면 전·월세와 주택 가격은 폭락하게 돼 있다. 결국 시장의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누가 소유했느냐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시장의 총수요와 공급이다.

부동산이 투기적 수요에 의해 거품이 발생한다는, 국토부 장관과 같은 일차원적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간과하는 우리의 특수한 사정이 있다. 우리의 주택 양식은 1960년대부터 급속하게 변화를 겪어 왔다. 농가에서 연립주택으로, 그리고 아파트도 구조와 품질이 급속하게 변화하고 아파트마저 국민총생산(GDP)이 300달러가 안 되는 70년대 지어진 것부터 1700달러이던 80년대 지어진 것들이 즐비하다. GDP 3만 달러를 바라보는 오늘의 기대에 턱없이 낮은 품질과 불편한 구조를 갖고 있는 주택이 대부분이다. 이는 200년 전부터 주택 양식에 큰 변화가 없고 가족의 분화도 서서히 진행된 선진국들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그런데 시장의 수요에 맞는 품질로 바꾸는 재개발 사업은 관료 집단의 자비하에 집주인들이 재개발을 결정해도 십수 년이 지나도 개발을 하지 못하는 비효율적인 관치의 영역이다.

김 국토부 장관의 부동산 시장에 대한 인식에 주목하는 이유는 노무현 정권의 실패한 부동산 정책이 재현될 가능성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도 부동산의 소유를 죄악시하는 인식에서 공급을 늘리는 대신 수요를 줄이는 정책을 시행했다. 그 결과는 우리가 알다시피 참담한 실패다.

시장을 소수의 악당들이 흐린다는 주장은 정부의 역할과 규제의 확대를 가져오고,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간섭이 커지면 경제자유도는 하락한다. 악당을 만들면 정치는 쉬워진다. 그런데 근본적 원인을 도외시하기 때문에 경제 문제는 악화된다. 역사적 진실에 따르면 시장의 경제자유도가 높은 나라가 분배 구조, 사회의 계층이동성, 행복지수 등 모든 면에서 앞선다. 노무현 정권하에 부동산이 폭등했고 분배 구조가 크게 악화된 이유를 되새겨봐야 한다.

시장을 적대시하고 도덕을 앞세운 정부가 로빈후드를 자임하면 경제는 정치화하고 혁신은 억압되며, 길게는 닦아주겠다던 눈물이 피눈물로 변한다. 김 국토부 장관의 호통이나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들은 시장에서 악당을 지목하고 스스로를 선한 로빈후드로 자처하는 큰 정부주의의 양상을 띠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실패에서 역사적 교훈을 얻었는지 의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이병태 KAIST 경영대학 교수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