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롱맨 6인의 동상이몽 북핵접근법... '압박'트럼프ㆍ아베 vs '대화' 시진핑ㆍ푸틴 vs‘제재ㆍ대화 병행’ 문재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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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명 중 악당은 분명 1명이다. 악당이 더 이상 나쁜 짓을 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는 데는 다른 5명도 동의한다. 하지만 말로 어르거나 달랠 것인지, 아니면 회초리나 몽둥이를 들어야 할 지를 두고 도무지 의견 일치가 안 된다.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만난 한·미·중·일·러 정상들이 북핵 문제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표출하는 게 꼭 이런 모양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거침없는 ‘말폭탄’을 쏟아내고 있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에 대해 그는 6일 “꽤 혹독한 조치(some pretty severe things)를 고려중”이라고 밝혔다. 군사옵션 등 극단적인 방안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가능한 대목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그렇다고 우리가 그것을 반드시 하겠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직후 워싱턴에서는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이 기자들과 만나 “외교적·경제적 노력을 우선으로 한다”며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예측불가성을 외교의 최우선 원칙으로 삼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교란술’인 셈이다.

미국은 중국도 타깃으로 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으로 6일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 만찬의 주된 메시지는 중국이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만찬 뒤 기자들과 만나 “3국 정상은 보다 강력한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신속하게 도출, 북한에 이전보다 훨씬 강한 압박을 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며 “북핵 문제 진전을 위한 중국 측의 적극적인 역할의 중요성에 주목했다”고 소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만찬 전 기자들에게 “(중국의 역할에 대해)절대 포기 안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본은 미국의 입장과 싱크로율이 거의 100%다. 마루야마 노리오 일본 외무성 대변인은 3국 정상 만찬 뒤 “일본은 북한의 무기 프로그램과 연관된 것으로 의심되는 중국 기업들을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미국이 이런 중국 기관들을 제재하는 것을 평가했다”고 전했다. 일본도 세컨더리 보이콧(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 기업·개인을 제재) 요소의 도입을 검토한다는 뜻이다.

중국은 여전히 대화를 중시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은 6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안정의 유지,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을 중시한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더 노력하라는 미국의 주장도 반박했다. 시 주석은 “북한과는 혈맹의 관계를 맺었고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그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북한과의 그런 관계를 감안할 때 중국은 충분히 노력하고 있는데, 국제사회가 중국의 노력이 부족하다고 비난하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전했다. 시 주석이 “북핵 문제는 한·중이 아니라 미·북 간 문제로 파악해야 한다. 중국에만 떠넘기지 말라”고 한 데는 ‘왜 우리만 갖고 그러느냐’는 불만이 깔려 있다.

중국 측은 공식 발표에서는 북한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뺐다. ICBM 발사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도 하지 않았다. 이를 ‘레드라인’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북한의 ICBM 도발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은 현실 부정에 가깝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5일 긴급회의 뒤 규탄 성명을 발표하려 했지만, 러시아가 발목을 잡았다.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은 ICBM이 아니라 중거리 탄도미사일이기 때문에 성명에 ‘ICBM 발사’로 규정하는 것은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니키 헤일리 주유엔 미국 대사는 “(ICBM인지 아닌지 확인을 위해)러시아에 정보가 더 필요하다면 내가 기꺼이 제공해주겠다”고 비꼬기도 했다.

시 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최근 정상회담 뒤 ‘한반도 문제에 대한 공동성명’도 채택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활동의 중단과 한·미 군사훈련을 동시에 중단하는 이른바 ‘쌍(雙)중단’,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를 동시에 가동하는 ‘쌍궤(雙軌)병행’이 핵심이다.

이처럼 미·일과 중·러의 입장이 명확히 나뉘는 가운데 한국은 압박과 대화의 병행이라는 중간자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교집합’으로서 역할을 할 가능성과 ‘회색분자’로 간주될 우려가 상존한다. 한·미·일 정상 만찬에서 문 대통령이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놓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자 아베 총리는 “대화를 위한 대화는 의미가 없다. 지금 같은 중대 국면에서는 압박을 가하는 것이 필수”라고 말하며 우회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남북정상회담과 평화협정 등을 제안한 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은 전혀 논의되지 않았다.

이희옥 성균관대 성균중국연구소장은 “중·러가 대화를 강조하는 것은 한국과 유사하지만, 사실은 한·미 합동훈련을 잠정 중단할 수 있는지를 한국에게 묻고 있다”며 “한국형 대화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는 현실 가능성 등을 따져 포괄적 로드맵과 액션 플랜을 정교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문 대통령이 정상외교를 통해 미·중·일·러의 스트롱맨 지도자들에게 ‘한반도 주도권’을 인정받은 것은 성과다.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레버리지를 확보, 이 주도권을 활용하는 것이 최상의 시나리오다. 문제는 북한 김정은 노동당위원장은 이런 문 대통령의 계획에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에 대해 북한의 대남 선전 매체 ‘우리민족’끼리는 “미국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박근혜 역도의 동족대결정책을 답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정은은 ICBM ‘화성-14’ 발사 직후엔 “미국놈들에게 심심치 않게 크고 작은 선물보따리들을 자주 보내주자”며 미국을 조롱했다.

독일에서 한·중 및 한·미·일 정상이 연쇄적으로 만나 북핵 문제를 협의한 6일 북한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평양에서 화성-14 발사를 자축하기 위한 대규모 군중대회를 열었다. 김일성 광장에서는 야외 무도회가, 대동강변 주체사상탑 일대에서는 화려한 불꽃놀이가 이어졌다.

위성락 서울대 객원교수는 “중·러의 연대가 눈에 띄고 북한의 행보는 더 눈에 띈다. 한국이 북한에게 대화 메시지를 던져놓고 제재에서는 미·일과 공조하는, 상충되는 것들을 병행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며 “아직 한국이 중·러 대 미·일 대립 구도 속에 완벽히 들어가 있지는 않은 만큼 이런 양분이 고착화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지혜·박유미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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