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가족·친구도 … ‘충동의 사슬’ 끊어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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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자살예방센터 직원들이 야간 당직 도중 걸려온 전화를 받아 심리 상담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서울시 자살예방센터 직원들이 야간 당직 도중 걸려온 전화를 받아 심리 상담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30대 회사원 김모씨는 2014년 4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세 번째 자살 시도였다. 그는 아버지의 가정 폭력을 겪었고 중학교를 중퇴했다. 학력 열등감, 아내와의 갈등 등이 이어지면서 두 차례 자살을 시도했다.

안 겪어 본 사람보다 8.3배 위험 #“막을 기회 5번은 있어 … 위로가 약”

중앙심리부검센터가 자살 사망자 121명의 가족을 조사했더니 36명이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이들은 모두 정신질환이 있었다. 특히 자살 시도자가 가장 위험하다. 하규섭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자살 사망자는 평균 여섯 번 시도 끝에 숨진다. 자살을 막을 기회가 다섯 번 있었다는 뜻”이라며 “전화 한 통만 해도, ‘병원에 가봐라’는 말만 해 줘도 자살 시도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위험군은 자살 사망자의 가족·친구 등이다. 사망자에 대한 미안함과 분노로 고뇌하고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 시달린다. 주부 임모씨는 15년 전 자살한 아버지 때문에 요즘도 갑자기 우울하거나 피·시체가 난무하는 환각에 시달린다. 자살도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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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심리부검센터가 2015년 자살자 유가족 151명을 분석한 결과 80.1%는 직장을 그만두는 등의 변화가 있었다. 26.5%는 심각한 우울 증세를 경험했다. 미국 자살예방 민관협력기구에 따르면 자살자 유가족의 자살 위험은 일반인보다 8.3배나 높다. 전홍진 중앙심리부검센터장은 “가까운 사람의 자살을 경험하면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자살을 떠올리거나 행동으로 옮기기 쉽다”고 말했다.

자살 예방 정책의 핵심은 자살 시도자, 사망자 유족 관리다. 심모씨는 3년 전 두 아들을 남기고 자살을 택한 남편을 원망했다. 그 뒤 심리 상담을 받고, 유가족 모임에서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예전 생활로 돌아갈 수 있었다.

충주시와 정신건강증진센터가 지난달 신탄금대교에 공동으로 설치한 자살 예방 문구. 이 다리에는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서 만든 자살 예방 문구 30건이 게시됐다. [연합뉴스]

충주시와 정신건강증진센터가 지난달 신탄금대교에 공동으로 설치한 자살 예방 문구. 이 다리에는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서 만든 자살 예방 문구 30건이 게시됐다. [연합뉴스]

이런 역할은 중앙심리부검센터와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 등에서 담당한다. 하지만 이런 서비스를 받아 본 유가족이 11.3%에 그친다. 상담인력이 태부족한 때문이다. 하규섭 교수는 “자살 사망자 유족 관리 예산과 인력을 늘리고, 이들을 피해자로 보는 인식 전환의 노력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정종훈·박정렬·백수진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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