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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같이 욕하고 따라해요” 저질 인터넷 방송에 노출된 초등학생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모씨가 진행하는 인터넷 방송은 기행과 욕설로 가득하다. 초등학생들은 이를 모방한 영상을 이씨에게 보내고, 함께 보며 떠든다. [사진 유튜브 캡쳐]

이모씨가 진행하는 인터넷 방송은 기행과 욕설로 가득하다. 초등학생들은 이를 모방한 영상을 이씨에게 보내고, 함께 보며 떠든다. [사진 유튜브 캡쳐]

“미션을 수행하겠습니다. 지나가는 초딩(초등학생) 머리를 때리고 도망가겠습니다.”
영상 속 초등학생이 학교 주변을 배회하며 다른 학생이 지나가길 기다린다. 이후 한 학생에게 다가가 뒤통수를 때리고 도망치면서 “미션 성공!”이라고 외친다. 유튜브에서 가명을 써가며 활동하는 이모(24)씨가 초등학생들로부터 받아 자신의 방송에 소개한 영상이다.

이씨는 요즘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이른바 ‘대세’라 불릴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는 79만7000여명, 페이스북 팔로워는 110만6000여명이다. 그러나 그가 만드는 유튜브 방송은 TV였다면 ‘어린이 시청불가’ 등급을 받았을 정도로 선정적이다.

이씨는 영상을 보내온 초등학생들의 외모를 비하하거나 성적인 욕설, 폭언도 서슴지 않는다. 조회 수 220만 건을 넘긴 한 영상에선 초반 15분까지 성적인 욕설과 폭언이 약 150여 회가량 쏟아진다. 1분당 10회꼴이다.

지난 2015년 인터넷 방송 ‘아프리카TV’는 “욕설과 선정성의 정도가 지나치다”며 이씨에게 영구 방송정지 처분을 내리기도 했다.

이씨는 지하철에서 라면을 끓여먹는 등의 기행을 방송에 담는다. [사진 유튜브 캡쳐]

이씨는 지하철에서 라면을 끓여먹는 등의 기행을 방송에 담는다. [사진 유튜브 캡쳐]

최근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이씨 같은 유튜버(유튜브에서 활동)와 비제이(BJㆍ아프리카TV 등 인터넷 방송 채널서 활동) 등 인터넷 개인방송진행자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이씨의 방송처럼 공공장소에서 기행을 일삼거나 욕설이나 폭언 등 같은 자극적인 영상을 찍어 올리는 경우가 많다.

이들의 주요 시청 타깃은 어린이와 청소년이다. 초등학생들은 이런 BJ들을 흉내 낸 영상을 찍어 친구들과 공유하고, BJ에게 영상을 보내기도 한다. 서울 동작구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강모(11)군은 ”반 친구들이 모여 영상을 같이 보고 따라하기도 한다. 영상을 보내면 방송에 소개해준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이모(9)군은 이런 모방 영상 촬영의 희생양이 된 경험이 있다. 이군은 ”하굣길에 형들이 이유없이 가방을 차고 갔다. 쳐다봤더니 스마트폰으로 내 모습을 찍으며 웃고 있어서 기분이 나빴다“고 말했다.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한 초등학교 교실의 '우리반 금지어' 목록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한 초등학교 교실의 '우리반 금지어' 목록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교실에선 BJ들이 자주 쓰는 욕설이나 비속어를 따라하는 학생도 늘고 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초등학교 교실에 붙은 ‘우리반 금지어! 지켜요’ 리스트가 화제가 됐다. 금지어 목록에는 ‘네 얼굴 실화냐, 패드립’ 등 BJ가 방송에서 즐겨 사용하는 속어가 나열돼 있다.

교사들은 인터넷 방송 시청에 대한 생활지도를 어떻게 할지 난감한 표정이다. 명확한 지도 지침이 없고 교내 지도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대전의 초등학교 교사 명모(29)씨는 ”가정에서 주의를 주거나 학교에서 개별 교사가 생활지도 하는 것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 스마트폰을 갖고 있는 학생이 많아 교사나 부모가 보지 않는 곳에서 영상을 보는 것은 막기 어렵다“고 말했다.

시내 한복판에서 옷을 벗고 있는 이씨의 영상 일부. [사진 유튜브 캡쳐]

시내 한복판에서 옷을 벗고 있는 이씨의 영상 일부. [사진 유튜브 캡쳐]

현행법상 인터넷 개인방송은 방송서비스로 분류되지 않아 공적 책임, 사업자 제한, 등급 분류 등의 규제에서 자유롭다. 그렇다고 인터넷 개인방송을 전부 방송 서비스로 분류해 제재할 경우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우려가 있어 법 개정 추진도 어려운 상황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방송 중 위법행위를 한 것이 아닌 욕설이나 기행을 벌인 것만으로는 제재가 어렵다“며 ”업계관계자들이 모인 자율규제협의체에서 유해성이 심각하다고 판단할 경우 접속 차단 등 조치를 취한다“고 밝혔다. 유튜브 측은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이용자들의 신고 기능 접수를 통해 대응한다“고 했다.

그러나 인터넷 방송 및 동영상 서비스 사업자들은 플랫폼만 제공하기 때문에 특정 영상에서 위법 행위가 발생하더라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오히려 자극적인 영상일수록 시청자가 많아지고, 광고 수익에 도움이 돼 자율규제에 적극적으로 나설 유인도 부족하다.

전문가들은 유튜브 등 플랫폼 제공 사업자에게 연대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최진봉 교수는 ”인터넷방송 논란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등급 제한을 강제할 법 규정이 없다”며 ”지나친 욕설이나 음란 영상이 반복될 경우 사업자가 불이익을 받는 기준을 마련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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