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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반도체 호황 ‘낙수 효과’가 아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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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임미진 산업부 기자

임미진 산업부 기자

반도체 업계에서 하루가 멀다고 낭보가 쏟아진다. 낸드플래시 업계 4위인 SK하이닉스가 업계 2위 도시바를 인수할 채비다. 삼성전자는 인텔을 누르고 세계 최다 매출의 반도체 회사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그런 와중에 삼성은 21조원을 추가로 들여 국내 반도체 생산 설비를 확충하겠다고 4일 밝혔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에 쐐기를 박겠다는 의지다.

두 회사가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패권을 쥐게 된 건 국가 전체로 봐서 든든한 일이다. 정보통신기술(ICT) 혁명으로 산업 구조는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제조업 중심의 한국이 인공지능(AI)이나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 미래 산업에 충분히 대비되지 않았다는 우려가 퍼지는데,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이런 미래 산업이 발전하면 할수록 메모리 반도체 시장도 따라 커질 거란 사실이다. “엄청난 데이터가 사물 간에 오가는 미래 사회에서 메모리 반도체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반도체 슈퍼 사이클’론이다.

이제 고민할 것은 이 결실을 어떻게 두 회사 만의 잔치로 끝내지 않고 사회 전체로 확대할 것인지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서 눈을 돌려 국내 반도체 업계 전체를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

우리 반도체 산업은 두 회사 빼고는 글로벌 시장서 경쟁력을 갖춘 회사가 거의 없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은 대기업뿐 아니라 반도체 장비를 만드는 회사나 반도체를 설계하는 회사들이 다양해 생태계가 두텁다. 치킨 게임으로 일부 대기업이 망해도 장비·설계 기업들이 든든히 버티고 서서 반도체 호황의 단물을 누린다.

이런 생태계가 형성돼야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위상도 더 굳건해진다. ‘반도체 굴기’를 목표로 천문학적 돈을 쏟아붓는 중국이 한국의 반도체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은퇴 인력이 해외로 유출되지 않으려면 국내에 갈 만한 반도체 회사가 더 많아져야 하는 것이다. 정부가 나서 반도체 중견·중소기업을 육성해야 하는 이유다. 잘 나가는 반도체 산업에 왜 정부 지원이 필요하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패권은 미국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한국으로 옮겨왔다. 이 패권이 언제까지고 지속되리란 보장이 있는가.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

임미진 산업부 기자 mi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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