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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 르포]"안철수 사과만이 살길" 자유한국당에도 밀린 국민의당을 보는 광주 민심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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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가 지난 5월 6일 대선 당시 광주광역시 충장로 무등빌딩 인근 거리에서 유세를 펼치며 인사하고 있다. 중앙포토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가 지난 5월 6일 대선 당시 광주광역시 충장로 무등빌딩 인근 거리에서 유세를 펼치며 인사하고 있다. 중앙포토

“안철수 전 대표가 증거조작 사건을 전혀 몰랐다는 게 말이나 된다요? 정 몰랐더라도 사과부터 해야제.”

유권자들 "안 전 대표 몰랐다는 말 안 믿겨…사과해야" #"증거조작 사건에 실망" 국민의당에 등돌린 호남 민심 #호남 당지지율 8.7%…한국당에 밀릴 정도로 '곤두박질 #김화자 장흥군의원 시작으로 '탈당 도미노' 여부 '촉각' #"호남 총 지역구 28석 중 23석 보유한 정당의 최대 위기" #"신뢰회복으로 당 붕괴 위기 넘겨야...내년 지방선거 기회"

4일 오후 광주광역시 서구 쌍촌동의 한 공원에서 만난 택시기사 김진규(67)씨는 최근 국민의당에 대한 지지 여부를 묻는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김씨는 “깨끗한 정치를 한다고 해서 창당 때부터 국민의당을 지지해왔는데 갈수록 뭘 하는 당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국민의 당 당원인 이유미씨가 지난달 29일 문재인 대통령 아들을 대상으로 한 '취업 특혜 의혹조작' 사건과 관련해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 당 당원인 이유미씨가 지난달 29일 문재인 대통령 아들을 대상으로 한 '취업 특혜 의혹조작' 사건과 관련해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광주 양동시장에서 야채를 파는 김선자(71·여)씨는 “대통령선거 때 가방을 메고 유세하는 모습이 참 믿음직스러웠는데 이제는 다들 못 믿겠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안 전 대표는 대선 기간인 지난 5월 광주 지역 재래시장과 도심을 돌며 ‘뚜벅이 유세’를 펼쳐 유권자들의 호응을 얻은 바 있다.

국민의당의 핵심 지지기반인 호남 지역 민심이 최근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대선 패배에 이어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준용씨의 특혜 채용의혹 증거조작 사건까지 맞물리면서 최대 위기에 몰렸다.

국민의당은 지난 3일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가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호남에서의 지지율이 8.7%까지 내려앉았다. 창당 후 처음으로 지지율이 한 자릿수로 떨어지며 자유한국당(8.8%)에도 뒤처졌다.

지난해 4월 총선 때만 하더라도 지역구가 총 28석인 호남에서 23석을 휩쓸었던 지지율이 1년 2개월여 만에 곤두박질한 것이다. 이 조사는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지난달 26일부터 30일까지 실시한 여론조사(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참조) 결과다.

이를 놓고 호남 정가에선 "국회의원 수만 보면 호남 최대 정당이 민심을 완전히 잃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민의당이 최근 “제보 조작사건은 이유미(38·여·구속)씨의 단독범행으로 잠정결론 지었다”고 발표했지만 유권자들은 여전히 불신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국민의당 '문준용 특혜채용 증거조작 사건'의 진상조사단장인 김관영 의원이 지난 3일 국회 당대표실에서 당 차원의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박지원 전 대표 수행국장의 통화내역을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당 '문준용 특혜채용 증거조작 사건'의 진상조사단장인 김관영 의원이 지난 3일 국회 당대표실에서 당 차원의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박지원 전 대표 수행국장의 통화내역을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당에 대한 지지율 하락은 대선을 전후로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지난해 총선에서 호남에서의 압도적인 지지를 기반으로 제3당의 위치에 올랐지만 대선 패배와 증거조작 사건 등을 거치며 지난해 2월 창당한 이후 최대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광주시민들은 이번 대선 때 문 대통령에게 61%의 표를 몰아준 반면 안 전 대표의 득표율은 30%에 그쳤다. 지난해 총선 때 국민의당 후보들에게 53%의 표를 준것과 비교하면 지지도가 23%포인트 떨어졌다.

전남 역시 문 대통령이 59%를 득표한 반면 안 전 대표는 30%의 표를 얻는 데 그쳤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총선에서 광주 28%, 전남 30%를 득표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 대선에서 표를 배정도 더 얻었다.

국민의당에 대한 이반 조짐은 정치권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국민의당은 최근 전남 장흥군의회 김화자(61·여)의원이 지난달 27일 국민의당을 탈당했다. 이를 신호탄 삼아 ‘탈당 도미노’가 나타나는 것 아닌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달 27일 국민의당을 탈당한 전남 장흥군의회 김화자 의원. [사진 장흥군의회]

지난달 27일 국민의당을 탈당한 전남 장흥군의회 김화자 의원. [사진 장흥군의회]

김 의원은 탈당하면서 “공당인 국민의당이 제보 조작사건에 전혀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고 국민의당을 비판했다.
3선 군의원인 김 의원은 최근 국민의당 진상조사단이 ‘제보 조작’을 이씨의 단독 범행으로 결론내린 것을 놓고도 “당 차원의 반성이 없는 실망스러운 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는 “철저한 검증 없이 대선에 활용한 것 자체가 국민 모두를 속인 행위”라며 “그 정도 조사나 사죄 표명으로는 대통령을 배출하겠다는 공당의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국민의당의 경우 안 전 대표를 믿고 표를 던지는 유권자가 유난히 많다”며 “이번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라도 직접적인 개입 여부를 떠나서 안 전 대표가 직접 사과를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내년 지방선거 때는 다른 정당에 입당하지 않고 무소속으로 출마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민의당 '취업 특혜 의혹 제보조작' 사건과 관련해 국민의당 이준서 전 최고위원이 지난 4일 오후 조사를 받기 위해 양천구 서울남부지검으로 출석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당 '취업 특혜 의혹 제보조작' 사건과 관련해 국민의당 이준서 전 최고위원이 지난 4일 오후 조사를 받기 위해 양천구 서울남부지검으로 출석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향후 검찰 조사 결과 등에 따라 지방의원이나 자치단체장의 탈당이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이미 지난해 총선을 치른 국회의원들과 달리 지방의원들은 정당 지지도가 최악인 상황에서 내년 선거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더민주의 경우 이번 리얼미터 조사에서 호남 지역 지지율이 66.1%에 달했다는 점도 향후 지역 정치인들의 지각변동 가능성을 높이는 부분이다.

실제 장흥에서 김 의원이 탈당한 데 이어 지난달 29일에는 박홍률(64) 목포시장이 취임 3주년 기자회견에서 “국민의당의 제보조작 사건에 대해 유감을 금치 못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향후 정치 진로에 대해서는 “시민들의 여론을 지켜보면서 신중하게 고민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박 시장의 발언은 내년 지방선거 때 재선 도전이 유력한 상황에서 국민의당과 민주당의 당적을 두고 고민하고 있는 점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어서 논란이 일었다. 목포시는 박지원 전 국민의당 대표의 지역구다.

국민의당 박지원 전 대표(오른쪽)와 이용주 의원이 지난 4일 오후 국회 법사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당 박지원 전 대표(오른쪽)와 이용주 의원이 지난 4일 오후 국회 법사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호남 지역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국민의당이 붕괴되면 안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당 차원의 반성을 토대로 두 당의 선의의 경쟁 구도를 살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자영업자인 김휘성(49·광주 광산구)씨는 “특정 정당의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되던 예전의 호남 정치구도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국민의당이 건강하게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의원들 역시 공식 입장표명을 자제하고 있지만 "검찰 수사를 지켜보자"는 분위기다. 향후 검찰 조사가 당내 진상조사와는 별개로 오히려 민심을 회복할 수 있는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안철수 전 대표가 2016년 1월 15일 국민의당 창당 준비 인재영입위원장으로서 이준서 전 최고위원을 영입한 뒤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트위터에 게재한 사진. 연합뉴스

안철수 전 대표가 2016년 1월 15일 국민의당 창당 준비 인재영입위원장으로서 이준서 전 최고위원을 영입한 뒤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트위터에 게재한 사진. 연합뉴스

지역의 상당수 전문가들은 국민의당 창당 이후 호남 정치권의 경쟁력이 높아졌다는 점에서 상생에 대한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기존 더민주 일색이던 호남에서 공약이나 정책이 다각화되고 풍성해지는 등 긍정적인 효가가 크다는 주장이다.

김호균(56) 전남대 행정학과 교수는 “구태를 답습했다는 호남 유권자들의 실망감을 없앨 수만 있다면 국민의당에 대한 민심도 되살아날 가능성은 있다”며 “누구보다 깨끗한 정치를 강조해온 안철수 전 대표가 솔직한 사죄를 할 경우 긍정적인 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고 충고했다.
광주광역시=최경호 기자 ckhaa@joongang.co.kr

국민의 당 당원인 이유미씨가 지난달 29일 문재인 대통령 아들을 대상으로 한 '취업 특혜 의혹조작' 사건과 관련해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 당 당원인 이유미씨가 지난달 29일 문재인 대통령 아들을 대상으로 한 '취업 특혜 의혹조작' 사건과 관련해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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