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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북한과 함께 사는 방법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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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8호 30면

Outlook

한반도 최대의 난제는 북핵 문제다. 20년 넘게 해법을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오히려 더 악화만 돼 가고 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2012년 집권한 이후 핵·미사일 개발에 광적으로 매달리고 있다. 김일성·김정일보다 훨씬 집요하다. 과거 소련의 최고 권력자 니키타 흐루쇼프(1894~1971)와 닮았다. 그는 미국과의 대결에서 지지 않으려고 핵·미사일 개발을 국정의 우선순위에 두었다. 그는 비록 원자핵폭탄·수소핵폭탄의 개발이 미국에 뒤졌지만 1957년 미국을 제치고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호를 우주에 쏘아올렸다.

핵폭탄 개발 미국에 뒤지던 소련 #인공위성 스푸트니크호 쏘아 역전 #김정은, 흐루쇼프와 유사점 많아 #반대파 숙청해 권력 기반 다지고 #제재에도 오히려 경제는 호전 #한국 도움 필요하던 과거와 달라

미국은 충격에 빠졌다. 자존심도 문제지만 그 로켓에 핵탄두를 장착해 미국을 공격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른바 ‘스푸트니크 쇼크’다. 당시 미국은 이를 방어할 능력이 없었다. 김정은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에 매달리는 것도 이런 점을 학습한 결과로 볼 수 있다.

흐루쇼프는 ‘스푸트니크 쇼크’를 군대에 적용해 59년 탄도미사일의 통제 및 운용을 담당하는 전략로켓군을 창설했다. 전략로켓군이 육군을 대신해 주력군이자 군대의 핵심이 됐다. 북한도 이를 본 따 전략로켓군(현재 전략군)을 만들었으며 김정은이 2012년 4월 처음으로 이를 공개했다.

흐루쇼프는 61년 10월 세계를 한 번 더 놀라게 했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사용된 모든 폭발물을 합친 것보다 10배나 큰 100Mt급 수소 핵폭탄을 제조했고, 이를 절반으로 축소해 핵실험을 했다. 지금까지 폭발한 가장 큰 폭탄이며 인류가 만들어 낸 가장 강력한 무기다. 미국의 가장 큰 핵폭탄은 25Mt이며, 실험한 가장 큰 폭탄은 15Mt이다.

김정은은 집권후 세 차례(3·4·5차) 핵실험을 했다. 그 가운데 지난해 9월에 감행한 5차 핵실험이 가장 큰 폭발 규모인데 10㏏정도로 추정된다. 흐루쇼프가 비교적 짧은 기간에 미국과 핵 경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체코슬로바키아·동독·불가리아·폴란드 등에서 우라늄을 빠른 시일 내에 쉽게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정은도 마찬가지다. 북한의 우라늄 매장량 추정치는 세계 1위로 알려졌다.

이런 점에서 흐루쇼프와 김정은은 유사점이 많다. 반면 차이점은 권력의 안정성이다. 흐루쇼프는 강력해진 핵·미사일로 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를 일으켰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미국에 양보했다는 공산당과 군부의 비난을 받았고 중·소 분열, 농업정책의 실패 등으로 브레즈네프 등 반대파에 의해 64년 실각됐다. 하지만 김정은이 흐루쇼프처럼 실각될 가능성은 현재로는 없다. 반대파가 될 만한 사람들을 모조리 숙청해 버렸기 때문이다.

대남 라인도 과거처럼 외교업무를 했던 유연한 사람들이 아니라 김영철·이선권 등 군인들이 장악하고 있다. 게다가 갈수록 강화되는 유엔 대북제재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상황은 오히려 나아지고 있다. 국산화·현대화·시장화가 북한 경제를 견인하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5·24 대북제재(2010년)가 발효된 지 7년이 지났고 개성공단이 중단된 지 1년이 흘렀는데도 북한 경제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 대북제재가 기대와 달리 효과가 미미한 것이다. 핵·경제 병진 노선을 앞세운 김정은은 ‘마이웨이’에 은 자신감이 붙은 모양새다.

김정은은 김정일 시대와 달리 한국에 도움을 받겠다는 아쉬움과 절박함도 훨씬 덜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시대는 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한국의 도움이 절실했지만 지금은 그때와 사정이 다르다.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치도 과거와는 확연하게 낮아진 것으로 보인다. 당시 북한은 남북교류를 통해 한국이 자신들의 방향으로 옮겨 올 것으로 기대했지만 오히려 2000년 이후 자신들이 한국 쪽으로 이동한 것을 깨달은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핵·미사일에 광적으로 몰두하는, 또 과거와는 확 달라진 북한과 상대해야 한다. 북핵 문제의 출구를 찾는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공동성명을 통해 ‘제재가 외교의 수단이다’ ‘북핵 문제 해결에 최우선 순위를 부여한다’고 명시했다. 외교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남북대화 재개, 한반도 평화통일 조성 등에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부는 ‘달라진 북한’과 ‘미국의 지지’라는 변화한 지형을 조합해 새 대북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과거처럼 우리가 하고 싶은 것만 일방적으로 고집하지 말고 상대와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그것은 변화된 상대를 면밀히 파악하는 데서 시작돼야 할 것이다.

고수석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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