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은 낡고 선원은 구인난 … 한국 원양어업 쓸쓸한 ‘환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4면

지남호 출항 당일 선상에서 있었던 출어식. [사진 이제호 당시 어업지도관]

지남호 출항 당일 선상에서 있었던 출어식.[사진 이제호 당시 어업지도관]

한국 원양어업은 1957년 6월 29일 원양어선 지남호(指南號)가 27명의 선원을 태우고 부산항 1부두를 출항해 인도양에서 참치잡이 시험 조업을 하면서 시작됐다. 29일로 꼭 60년 전의 일이다. 하지만 한국 원양어업은 날로 쇠퇴하고 있다.

어제 1호 원양어선 출항 60주년 #해양박물관, 조형물·사진 등 전시 #한국 경제 성장 견인한 원양어업 #2012년 정점으로 급격한 내리막 #역사 재평가, 활성화 지원책 절실

29일 오전 10시 부산 영도구 국립해양박물관 옆 공원에선 원양어업 진출 60주년 기념식과 기념 조형물 제막식이 열렸다. 너비 3.5m, 높이 3m인 조형물은 지남호와 뛰어오르는 참치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너비 1.4m, 높이 95㎝크기의 기념비도 세워졌다.

기념식에는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윤정구(90) 지남호 인도양 참치 시험조업 당시 선장, 당시 어업지도관이었던 이제호(89), 냉동사 이정현(85), 통역관 안승우(85)씨 등이 참석했다.

국립해양박물관 1층 다목적 홀에선 기념전시 ‘먼바다, 만선의 꿈’이 개막했다. 오는 9월 17일까지 열릴 전시에는 1957년 지남호 출항 당시 모습을 보여주는 희귀사진과 당시 선원수첩 등이 공개된다. 또 지남호를 실제 크기의 20분의 1로 축소한 지남호 모형 선박이 전시된다. 지남호 모형선박은 지남호 설계도와 지남호 사진, 이제호 당시 어업지도관 등의 증언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전시장엔 이승만 대통령이 경무대에서 원양어업에서 잡은 청새치 앞에서 기념촬영을 한 사진을 배경으로 관람객이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지남호가 잡아 경무대로 공수한 청새치. 청새치 왼쪽이 이승만 대통령이다. [국가기록원]

지남호가 잡아 경무대로 공수한 청새치. 청새치 왼쪽이 이승만 대통령이다. [국가기록원]

또 이날 오후 1시부터 해운대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는 한국 원양어업 현황과 전망, 다랑어·오징어 등 북양어업의 현황, 일본 다랑어 어업역사 관련 국제심포지엄이 열렸다.

우리나라 원양산업 수출액은 1958년 6만4000달러로 시작해 1970년 3800만 달러, 1980년 3억5200만 달러, 1990년 5억1700만 달러, 2000년 5억3900만 달러, 2010년 6억5800만 달러, 2012년 7억1200만 달러로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지난해 4억4400만 달러로 급격히 내리막길로 걷고 있다. 원양업체는 2002년 131개사에서 2015년 67개사로 줄어들었고, 어선 수도 감소하고 있다. 현재 등록된 어선 250여척의 90%가 선령 20년이 넘었다. 원양어선 선원 가운데 선장·기관장·항해사 등 간부급을 제외한 선원은 대부분 외국인으로 채워지고 있다.

한국원양산업협회 장경남 회장은 “지남호 시험조업 성공으로 10여년 뒤 우리나라 원양어선은 수백척으로 불어났으며, 원양어선의 외화벌이는 1960~70년대 우리나라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일등 공신이었다”며 “원양어업 진출 60주년을 맞아 원양어업의 역사를 재평가하고 원양산업 활성화를 위한 정책개발 같은 정부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29일 오전 부산 영도구 국립해양박물관 잔디밭에서 열린 원양어업 진출 60주년 기념 조형물 제막식. [송봉근 기자]

29일 오전 부산 영도구 국립해양박물관잔디밭에서 열린 원양어업 진출 60주년 기념 조형물 제막식. [송봉근 기자]

◆지남호(指南號)=1946년 미국 정부가 종합시험선으로 건조한 선박 2척 중 한척이다. 총톤수 230t의 강선으로 600마력의 디젤엔진을 탑재하고 트롤·연승·선망어업 등 복합 기능을 발휘하게 설계됐다.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냉동·냉장설비, 무선방향 탐지기, 측심기, 어군탐지기 같은 전자장비를 갖춘 최신 종합 시험선이었다.

1949년 3월 한국정부가 미국에서 인수했으며, 이승만 대통령은 “남쪽으로 뱃머리를 돌려 부를 건져 올리라”는 의미로 이 선박을 지남호(指南號)로 명명했다. 수산업 진출을 꿈꾸던 제동산업㈜이 1951년 9월 23만9000달러에 정부로부터 불하받아 인수했다. 처음에는 연근해어업에 투입되는 등 1957년 인도양 시험조업 출어까지는 특별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지남호는 원양어업 시험 조업 수년 뒤 퇴역한 것으로 전해진다.

황선윤 기자 suyohwa@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