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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1인당 연 74개 먹는 라면이 가장 한국적 음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한식의 품격
이용재 지음, 반비
532쪽, 1만8000원

음식 자체에 관한 이야기보다 음식을 둘러싼 소문이 득시글거리는 시대, 또 하나의 음식 관련 책이 나왔다. 그러나 이 책은 다르다. 표지를 보자. 띠지를 채운 사진이 빈 사기그릇이다. 이 밥그릇에 모락모락 김이 피는 뜨신 밥, 어머니가 새벽에 일어나 해주신 고운 쌀밥이 쌓이는 이야기를 기대하게끔 한다. 하나 띠지를 벗기면 사기그릇은 박살나있다. 한식에 대한 지은이의 생각이 이 깨진 그릇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밥그릇부터 깨고 하는 한식 얘기라. 시작이 짜릿하다.

지은이는 오늘 우리가 한식에 바치는 철석같은 믿음을 작정하고 반박한다. 딴죽을 거는 수준이 아니다. 곧장 달려와 정면으로 부딪힌다. 한식 얘기를 라면에서 시작하는 것부터 도발이다. 지은이에 따르면 가장 한국적인 음식은 라면이다. 엄청난 소비량(1인 1년 74개)도 그렇고, 일본에서 건너온 밍밍한 국물이 ‘윗분’의 한마디로 얼큰한 국물이 된 과정도 그렇단다. 공식 조리법을 무시하고 대충 끓여 먹는 꼴도 전통과 감성으로 포장한 한식의 주관적인 세계와 닮았단다. 이런 식이면 한식의 발전은 난망하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한식 문화를 조목조목 꾸짖는다. 직화구이는 너무 익혔고, 활어회는 너무 안 익혔고, 전은 튀김으로 대체하는 편이 낫단다. 태반이 싫은 소리이니 솔직히 정나미는 떨어진다. 이렇게 불만이 많은데 어떤 밥상을 차릴까도 문득 궁금했다. 그렇다고 반박하기는 어렵다. 손맛으로 상징되는 한식문화의 한계를 통계와 사실, 지식과 경험으로 또박또박 꼬집고 있어서이다. 공감한 구절이 있다. 우리는 밥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 밥의 가치를 제대로 생각한 적이 없다.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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