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외교안보대화 읽기]'최소 결과물'에 타협, 공은 한미정상회담으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핵 문제 해결의 방향타 역할을 할 것으로 주목됐던 미국과 중국의 외교안보대화(외교·안보 장관회담)는 서로의 미묘한 입장 차이만 봉합한 채 끝났다.

미국은 세컨더리보이콧 카드 꺼내지 않는 대신 #중국은 유엔 제재기업 10여곳과 북한과 거래금지 #미국의 '압박', 한국의 '대화' 역할분담론 성사 주목

북핵 문제 해결의 뾰족한 해법과 효과가 없는 현실을 인정한 채 '유엔이 정한 북한기업과의 거래금지'라는 최소한의 결과물만 내놓은 셈이다.

이에 따라 향후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 방법론은 29~30일에 걸쳐 이뤄지는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간 담판의 몫으로 남게 됐다.

미국 측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과 중국 측 양제츠 외교담당 국무위원, 팡펑후이 인민해방군 총참모장은 21일 (현지시간) 워싱턴의 국무부 청사에서 트럼프 정부 출범 후 첫 외교안보대화를 열고 "미·중 기업이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대상에 오른 기업들과 거래하지 못하게 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오른쪽)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21일(현지시간) 연례 미·중 외교안보 대화를 마치고 나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EPA=연합뉴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오른쪽)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21일(현지시간) 연례 미·중 외교안보 대화를 마치고 나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EPA=연합뉴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오른쪽)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21일(현지시간) 연례 미·중 외교안보 대화를 마치고 나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EPA=연합뉴스]

회담 하루 전까지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북한 문제와 관련해 시진핑 주석과 중국의 도움 노력을 매우 고맙게 생각하지만 그런 노력이 먹히지 않았다"며 '중국에 기대지 않는 독자 행동'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결국은 '중국 압박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로 기울 수 밖에 없었다.

외교적 방법을 통해 북핵문제를 해결하기로 방향을 정한 상황에선 북한 경제의 생명줄을 쥐고 있는 중국을 동원할 수 밖에 없다는 현실적 한계를 인정한 셈이다.

중국 입장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계속해서 중국을 겨냥해 세컨더리보이콧(제3자 제재)이란 카드를 흔들고 있는 상황을 마냥 외면할 수 없는 처지다. 중국은 기왕에 결정된 국제적인 대북 제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기로 함으로써 세컨더리 제재를 피하는 영리한 선택을 했다고 볼수 있다.

세컨더리보이콧은 북한과 거래한 제3국 기업에 대해 제재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 무역의 90%가량을 차지하는 중국 입장에선 북한과 거래하는 총 5000여 개 기업 대다수를 대상으로 한 광범위한 제재보다는 극히 일부 기업(10여 곳)만 해당되는 유엔 안보리 제재 결정을 준수하는 쪽이 훨씬 현실적이다.

특히 지난 13일 17개월간 북한에 억류됐던 미 대학생 오토 웜비어(22)가 '식물인간' 상태로 송환된 지 6일 만에 사망하면서 미국 내 대북 강경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해 있는 점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공동회견에서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웜비어 건은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도저히 이해할 방법이 없다. 이는 법과 질서, 인간성, 인간에 대한 책임감 등 어떤 측면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며 "미국인들은 계속 도발만 하고 아무렇게나 행동하는 (북한) 정권에 좌절을 느끼고 있다"고 강한 분노를 표출했다.

이에 따라 미국이 이달 초 북한과 거래의혹이 있는 중국 기업 10여 곳과 개인의 목록을 중국 정부에 전달하며 단속을 요구했을 때만 해도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 것"이라며 불쾌감을 드러냈던 중국은 전략적으로 '반 보' 물러나는 결정을 한 것으로 보인다.

대신 중국은 이날 외교부 홈페이지에 "중국은 이날 외교안보대화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체계의 한반도 배치 절차를 중단하고 철수를 요구했다"고 공지했다. 또 "쌍궤병행(雙軌竝行·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평화협정 협상)과 쌍중단(雙中斷·북한의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 제의가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었다"며 "유관 각국이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목할 점은 이날 미중 외교안보대화에서 드러난대로 트럼프 정권의 대북 정책의 기조는 확실히 '압박'에 놓일 것이란 점이다. 대화 자체를 거부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가시적인 단기 결과'가 없는 시간끌기식 대화에는 응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특히 의회와 언론의 움직임은 강경하다. 미 하원 외교위원회는 이날 홈페이지에 대북 제재와 관련, '미신 대 팩트(Myths vs Fact); 미국은 대북제재를 강화할 수 있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북한이 세계에서 가장 가혹한 제재를 받고 있다'는 것은 미신(오해)이다. 북한에 대한 중대한 압박은 그동안 불규칙하게 적용돼왔고 결코 실행되지 않은 (북측의) 약속에 의해 조기 해제됐다", "미국이 북한의 위협에 대응할 옵션은 제한적이란 시각도 미신이다. 북한 김정은과 지배계층에 대한 압박을 끌어올릴 여지가 충분히 있다" 등의 주장을 실었다. 제재를 더 강화할 여지가 분명히 있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오히려 이 같은 미국 내 강경 분위기 때문에 미국은 계속 압박을 취하고, 대신 대화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한국에 맡기는 '역할분담론'이 대두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한편 CNN은 미 당국자를 인용, "북한의 추가 핵실험 준비가 포착됐다"고 보도했다. 실제 북한이 핵실험을 도발한다면 다음주 한미정상회담에선 '대화'를 꺼내기 힘든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