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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에 살다] (48) 울산암 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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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아, 두명 모두 바위 속으로 들어갔군요. 안 보이지요. 가다 못가면 쉬었다 가는 게 바위길입니다. 저런 곳에서는 어떤 자세로 올라가야 하는지 시범을 보여주지요. 자, 주목! 주목! 이리 보세요. 알겠지요. 알았죠. 저곳에서부터는 밖으로 나와 그위로 올라가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나오질 않는군요. 얌마들! 그 속에서 뭣들하고 있어. 안 보이잖아. 빨리 나와봐! 그래도 안 나오는군요. 매우 겁을 먹은 모양입니다. 겁쟁이들이군요. 그러면 내려오든지 해야지요. 내려오면 하강이고, 올라가면 등반이 됩니다. 알겠어요? 이건 만고불변의 진리예요. 사고는 하강 때 잘 나는 법입니다. 엊그제 서울 북한산 인수봉에서 일곱명이나 얼어죽었죠. 바로 저런 사람들이 그런 사고를 당하는거죠. 더 보자구요? 안돼요. 시간이 없어요. 궁금한 사람은 내일 신문을 보도록 하세요. 사고가 나면 신문에 날테니. 자, 조용, 조용히 해주세요. 이제 기다리고 기다리던 울산암의 개념을 설명해드릴테니. 저 잘 생긴 울산암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제 고향인 울산 큰 애기, 울산 출신의 바위랍니다. 그런데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에 금강산에서 전국 바위컨테스트라는게 열렸지 뭡니까. 가장 잘 생긴 바위를 미스 코리아 뽑듯 뽑아내는 대회였어요. 이 소식을 접한 달마대사께서 '올커니! 울산의 그 바위라면 록코리아 진은 떼어 놓은 당상이다'며 신이 나서 그 바위를 금강산으로 끌어갔답니다. 그런데 한국 최대를 자랑하는 그 바위가 얼마나 무거웠겠어요. 아무리 힘 좋은 달마대사라지만 금강산을 지척에 두고 설악산까지 와서는 상금이고 그랑프리 상패고 뭐고 다 싫다며 그 자리에 놓아 버렸답니다. 그래서 그 길이가 무려 4km, 다시 말해 10리나 되는 이 바위가 바로 설악의 여기 이 자리에 떡하니 생겨난 거지요. 그래서 울산에서 왔다하여 울산암이 된 겁니다. 잘 알았죠? 기말 시험에 나올지 모르니 이 바위의 고향 울산과 그 곳에서 여기까지 끌고 오느라 진땀 뺀 달마대사님의 함자를 꼭 기억해두세요. 자, 이제 돌아갑시다. 1반. 2반. 어! 2반, 2반은 어디갔어. 이 자식들은 맨날 없어져. 야, 2반! 이것들을 콱!"

안중국씨와 나는 학생들이 내려갈 때까지 바위틈에서 나오지 않았다.

'정면벽 칸테 오른쪽 크랙'이라는 긴 이름의 이 코스는 1974년 8월 에코클럽의 유기수씨와 박일환씨가 개척했다. 울산암의 여러 암벽 중에서 가장 길고 깨끗하게 뻗어나간 바위면에 나 있는 이 코스는 갑자기 비박(텐트 없이 비상 노숙하는 것)을 요구하는 등 개척자들을 애먹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주 까탈스러운 코스는 아니어서 몸도 풀고 정찰도 할 겸 가벼운 마음으로 붙어봤는데, 난데없는 관광가이드의 중계방송 때문에 오도가도 못하고 세번째 구간의 침니 속에서 한참 웅크리고 있어야만 했다.

박인식 <소설가.前 사람과 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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