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원 팔아 작년엔 62원 이익, 올해는 85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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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한국 경제의 첨병, 제조업이 부활하고 있다. 올 들어 수출이 살아나면서 국내 제조업체는 ‘성장성·수익성·안정성’이 함께 호조를 보였다.

한국은행, 1분기 제조업경영분석 #전기전자·유화, 두 자릿수 이익률 #매출액은 지난해보다 9.3% 증가 #취업자 2.5% 줄어 고용없는 성장

15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기업경영분석’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 제조업의 매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3% 증가했다. 매출액이 늘었다는 건 해당 기업의 덩치가 커졌다는 의미다. 올해 1분기 매출액 증가율은 2014년 1분기(0.6%) 이후 3년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에서 벗어나 플러스로 돌아섰다. 9.3%의 증가율은 5년 전인 2012년 1분기(10.4%)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자료:한국은행

자료:한국은행

1등 공신은 수출이다. 반도체와 철강, 석유화학 등 주요 제품의 수출이 크게 늘었다. 특히 석유화학 분야는 지난해 1분기만 해도 매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8% 감소했지만 올 1분기엔 1년 전보다 21.2% 증가했다. 같은 기간 금속제품(-8.4%→14.4%)과 기계·전기전자(-2.7%→11.7%) 등도 큰 폭 성장했다. 최덕재 한은 기업통계팀장은 “반도체와 석유화학 등 주력 수출 품목의 물량과 가격이 함께 오르면서 제조업 매출 증가세를 이끌었다”고 말했다.

매출로 덩치만 키운 게 아니라 장사도 잘했다. 영업이익률도 대표되는 수익성도 좋아졌다. 올 1분기 제조업의 영업이익률은 8.5%로 집계됐다. 1000원어치를 팔아 85원 남기는 장사를 했다는 얘기다. 지난해 1분기에는 62원을 남겼다. 2010년 2분기(9.4%)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기계·전기전자와 석유화학의 영업이익률은 각각 11%, 10.2%로 두자릿수에 달한다.

안정성도 좋아졌다. 제조업의 부채비율은 지난 3월 말 68.5%로 지난해 말보다 0.2%포인트 떨어졌다. 차입금 의존도는 20%로 0.2%포인트 낮아졌다. 차입금 의존도가 낮을수록 이자 등 금융비용 부담이 작아져 안정성이 높아지게 된다.

1분기 제조업이 부활의 축포를 쏘아올렸지만 서비스업은 그렇지 못했다. 서비스업을 포함한 비제조업 매출액 증가율은 1분기 5.9%로 작년 4분기(2.4%)보다는 크게 나아졌지만, 제조업과 비교하면 3.4%포인트 낮다. 비제조업의 영업이익률은 4.9%로 역시 제조업에 비해 3.6%포인트 쳐진다. 최덕재 팀장은 “아무래도 서비스업 대부분이 내수업종이라 수출 주도로 가격이 오른 제조업의 수익성 개선세에는 못 미쳤다”고 말했다.

자료:한국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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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진 SK증권 연구원은 “1분기 우리 경제는 수출은 좋은데 내수가 살아나지 않은 전형적인 상황”이라며 “새 정부가 내수를 부양하고 일자리를 늘리고 가계 구매력을 높여주겠다는 정책 방향을 세우긴 했지만 이런 정책이 영향을 미치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하반기에도 내수(비제조업)가 크게 살아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 상황이 나아지는 가운데서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는 더 벌어졌다. 매출액 증가율은 대기업이 8.1%, 중소기업은 6.7%에 그쳤다. 영업이익률 역시 대기업(7.2%)이 중소기업(6.2%)에 비해 높았다. 특히 부채비율은 대기업이 86.2%인데 반해 중소기업은 113.1%에 달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과거 제조업이 활성화되면 국내 일자리가 많아지고 경제 상황이 좋아졌지만 그때는 제조업 분야에서의 자본설비투자가 같이 늘었기 때문”이라며 “이번처럼 제조업이 살아난 게 수출이 늘어서, 그것도 반도체와 화학 부문이 좋아져서라면 제조업 매출 증가세가 일자리 등 전반적인 경기 활성화로 직접 연결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1분기 제조업 취업자수는 433만2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454만4000명)보다 2.5% 줄었다. ‘고용 없는 성장’인 셈이다.

한은은 이번에 외부감사대상(자산 120억원 이상 등) 비금융 영리법인기업 3062곳을 뽑아 설문조사를 했고, 이들 기업 중 82.9%가 응답했다.

고란·정진우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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