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얼음골, 그 비밀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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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9면

경남 밀양의 천황산 중턱에 자리잡은 얼음골. 조선시대 명의 허준의 스승인 유의태가 자신의 시신을 제자에게 물려줬다는 전설로 유명하다.

경북 의성군의 빙혈과 풍혈, 전북 진안군의 풍혈과 냉천, 충북 충주의 금수산 등 전국에 12군데 정도가 여름에 얼음이 어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얼음골의 비밀은 무엇일까. 자연의 기이한 현상을 해석하려는 과학자들의 연구가 이어지는 중이다. 최근 수년간은 여름철에 얼음이 얼지않아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지하 깊숙한 곳에 지하수가 있어 여기서 증발한 수증기가 돌밭 바깥으로 나오면서 얼어붙는다는 이론, 지하에 거대한 얼음이 존재해 차가운 바람이 나온다는 이론 등 많은 가능성이 제시됐다.

그중에서 얼음골의 비밀은 구멍이 숭숭 뚫린 채 경사진 비탈면에 쌓인 화산암에 있다는 한국과학기술원 송태호(기계공학과) 교수의 이론이 가장 사실에 근접한 것으로 평가받아 왔다.

1994년 발표된 송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겨울철 차가운 공기가 돌밭의 하단으로 들어가 돌의 열을 빼앗아 데워진 다음 위로 올라가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돌밭 전체가 잔뜩 차가워진다는 것.

이후 여름이 되면 돌 안쪽의 차가운 기운이 하단으로 빠져 나오고 빈 공간을 위에서부터 뜨거운 바람이 채워넣는다는 자연대류설이다. 그래서 여름철에만 얼음골로 불리는 밑부분에서 찬바람이 분다는 것.

최근 들어서는 실증자료에 기초한 부산대 황수진(지구과학교육과) 교수의 '냉기 저장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1999년부터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요소 요소에 기상관측 시스템과 센서를 달아 데이터를 분석해 왔다.

특히 지난해와 2001년을 비교했을 때 차이가 확연히 드러났다. 여름철 기온은 지난해에 비해 2001년이 더 높았지만 돌밭 내부의 최고 온도는 지난해(섭씨 12도)보다 훨씬 낮은 섭씨 4도였다.

2001년 1.2월 평균기온이 영하 1.69도인데 반해 지난해에는 섭씨 2.12도에 그친 것이 원인이라고 황교수는 지적했다. 바로 전 겨울철에 돌밭이 얼마나 냉각되는가에 따라 한여름에 시원한 바람을 내는 현상이 오래 지속된다는 것.

황 교수는 "그간의 데이터를 종합해 가을 기상학회에 발표, 얼음골에 관한 논쟁에 종지부를 찍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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