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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음 쏟아질 무렵 나타나는 터널 … 깜빡하는 순간 대형참사로 연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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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지난해 7월 강원도 평창군 영동고속도로 인천 방면 봉평터널 입구에서 관광버스와 승용차 5대가 잇따라 추돌해 20대 여성 4명이 숨진 사고. [사진 강원소방본부]

지난해 7월 강원도 평창군 영동고속도로 인천 방면 봉평터널 입구에서 관광버스와 승용차 5대가 잇따라 추돌해 20대 여성 4명이 숨진 사고. [사진 강원소방본부]

“이곳은 터널 앞이라 한순간만 방심해도 대형사고 발생 위험이 매우 커요.”

영동고속도로 봉평터널~둔내터널 #사망사고 잦은 원인 분석해 보니 #1시간 이상 운전으로 피로 누적 #터널 직전 상습 정체로 위험 가중 #최근 6년간 105건 사고 12명 숨져 #터널 주변 경고·감속 그루빙 필요

지난달 22일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진조리 영동고속도로 인천 방향 173.6㎞ 지점. 교통안전공단 강원지사 홍성령 교수가 도로 구조와 차량 움직임을 유심히 본 뒤 이렇게 말했다. 홍 교수는 “터널에 근접하면 본능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아 지·정체 현상이 생긴다”면서 “이때 뒤따르던 차량은 잠깐만 한눈을 팔아도 사고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홍 교수가 둘러본 이곳은 지난달 11일 고속버스가 승합차를 들이받아 60∼70대 노인 4명이 숨지고 4명이 다친 일명 ‘마의 구간’이다.

기자가 사고 구간인 영동고속도로를 직접 달려봤다. 둔내터널(3.3㎞)에서 1㎞가량 떨어진 사고지점에 가까워지자 지·정체 현상이 나타나면서 속도가 50㎞까지 떨어졌다. 뒤따르던 차들도 갑자기 속도를 줄였다. 사고 영상에서 본 피해 차량의 움직임과 비슷한 상황이 이어졌다.

경찰은 당시 사고 버스의 운행기록 장치를 분석했다. 그 결과 버스의 주행 속도는 시속 92㎞. 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차량이 평균 시속 100㎞로 달리면 1초에 28m를 주행한다. 단 2초만 깜빡 졸아도 50m 이상 눈 감고 달린 것과 같다.

전문가들은 이 구간이 졸음운전에 취약하다고 했다. 이 구간은 강릉·동해·삼척 등에서 출발한 운전자들이 1시간~1시간 30분가량 운전을 하면 도달한다. 하지만 봉평터널(1.5㎞)과 둔내터널 전에는 마땅한 휴식 공간이 없다. 이 구간을 지나야만 졸음쉼터와 휴게소가 나온다.

실제 경찰 조사에서 버스 운전기사 정모(49)씨는 “춘곤증으로 깜빡 졸았다”고 진술했다. 정씨는 강릉에서 식사를 마치고 오후 2시30분에 출발해 경기 파주시 문산으로 가던 중 사고를 냈다. 사고 시간은 오후 3시28분으로 식사 후 1시간가량 운전을 한 곳에서 사고를 낸 셈이다.

그렇다면 이 구간에서 발생한 그동안의 사고들은 어떨까.

중앙일보는 강원지방경찰청과 함께 봉평터널~둔내터널 전·후 1.5㎞(총 14.1㎞)에서 발생한 사고(2012~2017년 5월 15일)를 분석했다. 이 도로에선 교통사고 105건이 발생해 12명이 숨지고 365명이 다쳤다.

시간대별로 분석한 결과 오후 1시부터 오후 4시에 발생한 사고가 44건(41.9%)이었다. 대부분이 식사 뒤 1~2시간 운전을 한 시간대에 발생한 셈이다. 요일별로는 일요일이 35건으로 가장 많았고, 토요일이 24건, 금요일 15건으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이 구간 노면부분 안전장치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한중섭 교통안전공단 강원지사 안전관리 부장은 “터널마다 주변에 졸음운전 예방과 감속을 위한 그루빙(도로에 크기와 간격이 다른 홈을 판 것)작업을 한 곳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도로공사는 둔내·봉평터널 2㎞ 전방부터 그루빙 작업을 하기로 했다.

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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