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합의 재협상’ 잘못 언급…장관 후보자 발표 두번 한 청와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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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 부처의 장관 후보자가 발표된 13일 청와대가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브리핑을 1시간도 안 돼 다시 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정 후보자 지명 배경을 설명하며 한·일 간 위안부 합의와 관련한 문구가 포함된 것이 발단이었다.

정현백 여가부 장관 후보자 지명하며 #“위안부 합의 재협상 등 해결 적임자” #45분 만에 “실수”…문구 삭제 뒤 재발표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오후 2시15분 장관 후보자 지명 브리핑에서 정 후보자에 대해 “여성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재협상 등 긴급한 현안도 차질없이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위안부 합의 재협상을 기정사실화한 듯한 설명으로, 재협상에 대해 명확한 방침을 밝히지 않았던 기존 정부 입장과는 결이 다른 내용이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이는 사실상 위안부 합의 재협상에 방점을 두고 말한 것이냐”고 묻자 박 대변인은 “어쨌든 정 후보자가 사학과 교수이기 때문에 역사 인식을 바탕으로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는 기본 철학이 있다는 부분을 감안했다”고 말했다. 또 “재협상은 한·일 간 여러 정치적 상황에 따라 진행될 문제다. 그런 바탕이 깔려 있다는 설명으로 이해해달라”고 즉답을 피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위안부 합의 재협상을 주장했으나, 취임 뒤에는 말을 아끼고 있다.
문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간의 두 차례 통화에서는 물론이고, 특사들이 양국 정상을 접견하는 과정에서도 재협상이나 합의 파기라는 단어는 언급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수차례 “우리 국민 대다수가 정서적으로 합의를 수용하지 못하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양국이 지혜를 모아 개선하길 희망한다”고 발언했고, 사실상 이것이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이해됐다.

게다가 위안부 합의의 주무부처는 여성가족부가 아닌 외교부다. 박 대변인의 브리핑을 접한 외교부 당국자들은 말을 아꼈지만,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청와대는 뒤늦게야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식했다. 오후 2시57분 권혁기 춘추관장이 나타나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설명 중 마지막 줄을 삭제하고 다시 내용을 발표하겠다”고 공지했다. 오후 3시 박 대변인이 또 마이크를 잡았고 “정현백 후보자가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재협상 등 긴급한 현안도 차질없이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는 내용을 뺀 채 지명 사실을 다시 발표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실수다. 위안부 합의 재협상이라는 표현이 들어갔는데, 이것이 재협상을 기정사실화한다는 오해를 줄 수 있다는 지적이 있어서 수정했다”고 설명했다.
“발표문은 인사부서에서 내려온다”며 청와대 내부적으로 조율이 미흡했다는 점도 시인했다. 또 “(재협상이 후보 시절)공약했던 사항이라고 해도 현재로서 그 문제를 그렇게 확정적으로 말씀드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지적이 있을 수 있고, 그 지적이 옳다고 인정한다”고 말했다.

외교가에선 "아직 청와대 조직이 완전히 갖춰지지 않은 상황임을 감안해도 위안부 합의처럼 예민한 외교 사안을 다루는 데 있어 청와대가 경솔한 태도를 보여 혼선을 빚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문 대통령 취임 이후 일본 측은 새정부가 위안부 합의에 대해 어떤 접근을 할 것인지에 대해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신각수 전 주일 대사는 “정부 초기라 실수가 있을 수는 있지만, 사안의 파급력을 생각할 때 정부 차원에서 일관되고 종합적인 메시지를 발신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대통령도 재협상이란 말을 분명하게 하지 않으면서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는 만큼 그에 맞춰 메시지 관리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유지혜·위문희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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