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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납품값 확 깎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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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현대자동차가 이달 초 모든 부품 납품업체를 대상으로 총 1조3000억원어치의 단가 인하(CR:코스트 리덕션)를 통보한 것으로 14일 확인됐다. 현대차는 이번 주까지 단가 인하를 마무리하고 다음달 초부터 인하된 가격을 적용하기로 했다. 기아차도 지난달 로체 승용차 납품업체에 대해 일괄적으로 13%의 CR을 단행했다.

현대.기아차 구매총괄본부는 이달 초 부품업체들에 "환율 하락과 해외 투자 급증 등으로 수익성이 나빠져 납품가격을 최고 15%까지 인하하겠다"고 통보했다. 이번 단가 인하는 현대차 창사 이래 최대 규모로, 지난해 현대차의 영업이익(1조3800억원)과 비슷한 액수다. 현대차의 올해 부품 구매 규모는 약 20조원에 달한다.

현대차는 올해 원화 강세에 따라 이 같은 단가 인하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는 원화 가치가 10원 상승할 경우 매출은 1200억원, 영업이익은 800억원 줄어든다. 매출액 중 수출 비중이 60%를 넘는다.

현대차 관계자는 "세계 시장에서 점점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환율마져 급격히 하락해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고통 분담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매출 1000억원 이하 중소형 부품업체들에는 5% 수준의 납품가 삭감이 결정됐다. 지난해 60억원대의 영업이익을 낸 A업체는 영업이익보다 많은 CR을 통보받았다.

이 회사는 최대한 비용 절감을 해도 적자를 벗어날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한 중견 부품업체 관계자는 "대부분 부품업체의 영업이익률이 1~3% 수준인데 5%의 단가 인하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일괄 삭감보다 생산성 향상을 전제로 한 CR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단가 인하에는 현대모비스.글로비스 등 계열사도 포함돼 있다. 이들 계열사는 지난해까지 영업이익률 8~12%를 보장받았었다. 글로비스 관계자는 "지난해까지는 별다른 CR 요구가 없었지만 올해는 강도가 달라 어떻게든 CR에 동의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올해 달러 가치가 950원 이하로 떨어질 때 지난해와 같은 비용을 쓸 경우 영업이익률이 3% 이하로 하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해 하반기부터 신차 가격을 올리는 등 '영업이익률 5% 지키기' 목표를 세운 바 있다.

정몽구 회장은 올 초 위기를 강조하며 각종 비용 4000억원 절감을 지시했었다. 이에 따라 기아차는 국내 출장(제주 제외)은 모두 고속철도(KTX)를 이용하고 임원들이 유럽 등에 출장갈 때 이코노미클래스를 이용한다. 현대차는 회식비용 등을 30% 이상 줄였다.

현대차는 2003년 10월에도 노사분규에 따른 임금 인상 등을 보전하기 위해 수천억원 규모의 CR을 했었다.

?외국의 경우=지난해 경영 실적이 매우 나빴던 GM.포드 등 미국 업체들도 10% 이상 일괄적인 단가 인하를 적용하고 있다.

일본 자동차 업체도 90년대 초 엔화 가치의 급상승으로 대규모 CR을 했다. 닛산의 경우 일괄 삭감을 적용해 부품업체와 협력관계가 나빠졌고 경영 악화로 이어졌다. 도요타는 60년대 이후 생산성 향상으로 인한 잉여이익분을 조사해 선별적으로 단가를 인하해 오고 있다.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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