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미래 에너지' 버린 과기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연초부터 미국은 조지 W 부시 대통령까지 나서 탈석유를 외치며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고 원자력 신기술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외신이 속속 들려오고 있다. 원자력 열강들은 세계 민수 원자력계마저 자신들의 손아귀에 넣겠다는 계획을 착착 진행하고 있는 마당에 우리는 기왕에 참여하기로 한 원자로 개발사업에서 손을 빼겠다는 방침을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과기부는 서명식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로 서너 가지를 들었다. ▶개발에 참여할 필요성과 성공 확신이 없고▶참가국이 모두 강대국인데 개발에 성공한 뒤 한국만 빼 버릴 우려가 크다는 점을 들었다. 또 2030년 상용화되면 외국에서 수입해 쓰면 된다는 논리도 내세웠다. 이런 과기부의 주장은 허점투성이다. 나트륨 냉각 고속 원자로 개발에 성공할 것으로 확신한다면 선진국들이 단독으로 하지 뭐하러 기술도 없는 한국을 끼워 줬겠는가.'인공 태양'이라 불리는 핵융합로의 경우도 개발 확신이 없기 때문에 한국을 포함해 7개국이 5조원(한국 부담 5000억원)을 들여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는 것이다. 성공 확신이 없을 때 투자해야 성공했을 때 더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

개발에 성공한 뒤 선진국들이 한국을 뺄지 모른다는 논리는 말이 안 된다. 계약서가 있고 공동 연구를 했는데 개발한 뒤 참여자를 소외시키는 일은 국제 관례상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상용화되면 수입해 쓸 수 있다'는 주장은 부존 에너지와 에너지 생산 기술이 부족한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과학기술 정책을 담당하는 과기부가 해선 안 될 말이다. 에너지 대량생산 기술과 시설은 확보하기도 어렵지만 그 기간도 짧게는 5년(원전), 길게는 20년 넘게 걸린다.

지금이라도 과기부는 눈을 더 크게 뜨고 한국 에너지의 미래를 생각할 때다. 10년, 20년 뒤 이 기술이 상용화됐을 때 땅을 치고 후회해봤자 그땐 늦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