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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 위기 북극곰·호랑이·레서판다 … 그들의 아픔 실과 천으로 수놓았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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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동물인형을 안아 든 백은하 작가가 작품 ‘헬로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활짝 웃고 있다. [김춘식 기자]

동물인형을 안아 든 백은하 작가가 작품 ‘헬로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활짝 웃고 있다. [김춘식 기자]

강제로 사료를 먹여 비대해진 거위, 갈라진 거위 뱃속의 붉은 꽃무늬…. 불편한 모습이 연상되지만 실제로는 알록달록한 실과 천으로 짜인 수예(手藝) 작품 ‘구스다운’이다. 5년차 작가인 백은하(30)씨가 만들었다. 이달 28일까지 서울 압구정로 한사토이에서 ‘라이프(LIFE)-천과 실로 그린 동물이야기’ 전시회를 열고 있다. 거위·토끼·호랑이 등 대중에 친근한 동물부터 부채머리수리·레서판다 등 희귀동물까지 다양한 동물이 묘사된 작품 30점이 전시돼 있다. 작품 크기(15×15㎝~55×55㎝)도 다양하다. 작품당 스무 가지 이상 원단이 고루 활용됐다.

‘라이프 … ’전시회 연 백은하 작가 #희귀동물 수예작품 30점 선봬 #대학에서 의류 제작 실습하다 #학대 당하는 동물 보호에 관심

백씨는 이처럼 실과 천을 소재로 활용하는 독특한 아이디어로 주목받고 있다. 그는 “천과 실은 의류 소재로 쓰이는 등 대중이 친근감을 느끼는 소재”라고 설명했다.

작품으로 묘사하는 대상도 독특하다. 모피 등 의류 제작에 희생되거나,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들이다. “대중이 동물 보호에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에서란다.

그가 동물 보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대학생 때다. 원래 미술가를 꿈꿨던 백씨는 이화여대 패션디자인학과에 진학, 의류 제작을 공부했다. 그는 “실습에서 피모(皮毛)가 갈라진 동물을 보고 가슴 한구석이 먹먹했다”며 “동물의 아픔을 구현해 동물 보호에 대한 관심을 끌어 올려야겠단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백씨는 실과 천이 동물을 표현하기에 어울리는 소재란 점도 강조했다. “동물의 신체 일부가 잘리거나 산 채로 털이 뽑히는 모습은 대중이 불편하게 느낄 수 있어요. 거위의 갈라진 뱃속을 붉은 꽃무늬로 수놓으면 작품에 대한 거부감을 줄일 수 있죠.”

영감을 받는 계기도 다양하다. 2015년엔 영화 ‘대호’를 관람한 뒤 멸종 위기에 처한 시베리아 호랑이에 관심을 갖게 돼 ‘마지막 호랑이’를 제작했다. 지구 온난화 뉴스를 접하고 나선 북극곰 등이 나오는 ‘안녕, 북극(Hello Arctic)’을 만들었다. 첫 전시회(2013년) 이후 백씨가 묘사한 희귀동물은 100종에 달한다.

반응도 좋다. 최근 한 관람객은 “다시는 모피옷을 안 입겠다”고 약속했고, 세계자연기금(WWF) 측으로부터는 동물 보호 프로젝트 제안을 받았다. 내달 일본서 열릴 전시회를 위해 출국한다는 백씨는 “사람들이 위기에 처한 동물에 공감하는 데 이번 전시회가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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