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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탈(脫)원전’ … 고준위 방폐물 처리장 대책이 우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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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승호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이승호경제부 기자

이승호경제부 기자

“40년 후 ‘원자력발전 제로(0) 국가’를 만들겠다.” 문재인 대통령은 선거에서 ‘탈(脫)원전’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지난 2일 국정기획자문위원회도 공약에 맞춰 신고리 원전 5·6호기를 비롯한 신규 원전의 건설 계획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현 정부는 노후 원전은 가동 연장을 하지 않고 가능하면 폐로(廢爐)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정부는 18일 부산시 기장군의 고리 원전 1호기 가동을 멈추고 장장 10년여의 폐쇄작업에 들어간다. 고리 1호기 폐로는 2015년 6월 결정됐다. 원전 폐로는 화력발전소 등의 폐쇄와는 차원이 다르다. 방사능 오염도가 높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사용후 핵연료) 처리 때문이다. 고리 1호기의 폐로가 이뤄지면 그동안 이곳에서 쓰였던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어떤 식으로든 처리해야 한다. 문제는 국내에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이 없다는 점이다.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은 고리 1호기에서 나올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인근 고리 2~4호기로 옮겨 저장할 예정이다. 임시방편이다. 이 방법도 오래갈 수 없다. 2024년엔 저장 공간이 다 차기 때문이다. 2023~2025년엔 2~4호기도 수명이 다해 폐로해야 한다. 경주 월성 원전도 2019년, 영광 한빛 원전과 한울 원전도 2024년과 2037년이면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의 저장 용량을 다 채운다. 1978년 상업운전을 한 이래 40년 가까이 처리장 없이 발전소에 보관했던 ‘땜질식’ 처방의 결과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정부는 83년부터 후보지를 선정하며 폐기물 처리장 건설을 추진했지만 지역 주민의 반대로 실패를 거듭했다. 2015년 중·저준위 처리장만 경주에 지었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문제는 2015년 6월 고리 1호기 폐로를 결정했을 때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하지만 정부는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1년이 흐른 지난해 11월에야 산업통상자원부가 국회에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절차를 담은 법안을 제출했다. 2028년까지 관련 부지를 정하고, 2053년에 완공해 가동에 들어가겠다는 것이 골자다. 그때까진 원전 내부에 임시 저장시설을 더 지을 계획이다. 하지만 법안은 표류 중이다. 탄핵 정국 속에 원전 인근 주민의 강한 반대를 의식한 정치권이 소극적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탈원전을 말하기 앞서 40년 동안 쓴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에 대한 처리 대책을 세워야 한다. 언제까지 폭탄 돌리기 하듯 문제를 떠넘길 순 없다. 볼일(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 보겠다면서 정작 화장실(처리장)은 만들지 못한 현실에서 가장 필요한 건 정부의 의지다. 정부는 더 적극적으로 지역 주민을 설득하고 공론화해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건설 시기를 앞당겨야 한다.

이승호 경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