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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투덜이를 귀하게 여기는 일터는 어디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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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전영선산업부 기자

전영선산업부 기자

“내년까지만 버티고 대책을 찾을 거야.”

‘신의 직장’으로 통하는 공기업에 다니는 지인으로부터 지난 10여년간 들은 말이다. 괜한 말이 아니라 실제로 그는 그 기간 다양한 대안을 모색해왔다. 물론 회사에는 비밀이다. ‘배부른 소리’로 여기기엔 그가 그동안 경험한 심리적, 물리적 고통의 정도를 목격해 뭐라 말은 못한다. 물론 분명 내년에도 그만두지 못할 것이라는 점도 확실하다.

일터에서의 고통 호소는 범사회적 현상이다. 불안한 형태의 고용과 저임금과 함께 장시간 근로를 하면서 안팎으로 각종 ‘갑질’에 시달리는 직종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기는 것조차 힘든 사회는 병든 사회이기에 당연히 개선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신의 직장에서도 지원자가 몰리는 기업에서도 “내 일에 만족한다”는 근로자는 드물다. 위험해 보일 정도로 ‘헬조선’이라고 입을 모은다.

범위를 좀 좁혀 도대체 무엇이 가장 큰 고통인지를 살펴보면 출발점은 다양하되, 결국 하나의 문제로 수렴된다. 말이 통하지 않는 조직 문화 다. 이는 ‘난 여기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감으로 이어진다.

정해진 답이란 대체로 연초 최고경영자가 제시한 방향, 핵심 키워드와 연관성이 높다. 공기업은 정부 시책에 따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 무엇인가’를 만들어야 한다.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어 의심하면 무능하다는 말을 듣게 된다. 이는 ‘퇴근 이후 카톡 등으로 업무 지시 금지’, ‘칼퇴근법’, ‘00일간 유급 휴가’ 등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의 범위를 넘어선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2월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조사에 따르면 기업의 회의 문화는 100점 만점에 낙제점인 45점이었다. 그 이유는 ‘단순 업무 점검 및 정보 공유 목적이라서’(32.9%), ‘일방적 지시 위주라서’(29.3%)가 가장 많이 꼽혔다. 한 기업 관계자는 “장시간 논의한 뒤 결국 전혀 의견을 바꾸지 않는 팀장보단 차라리 단칼에 잘라 정리해 주는 팀장이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회의에서 예상 가능한 문제점을 제기하면 따로 불려가 “그냥 좀 갑시다” 정도의 언질을 받게 된다. 이럴 경우 투덜이로 찍히기 일쑤다.

의욕을 보이는 것보다 정해진 답에 따라 움직이는 게 이득일 때 의지를 관철하는 사람은 꽤 용감한 사람이다. 뒷담화로 풀고 모른 척 따르면 중간은 가는 게 현실이다. 이럴때 다른 의견을 내는 사람을 소중한 자산으로 평가하길 바라는 바람은 욕심일까.

전영선 산업부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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