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출신 27세 시민권자 등 테러범 신원 공개 파장 8일 총선 막판 변수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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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현지시간) 치러지는 영국 총선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지난 3일 밤 런던브리지ㆍ버러마켓 테러범들의 신상이 공개되면서 막판 선거 판세가 안개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영국 경찰이 발표한 테러범 중 한 명이 이슬람 극단주의를 다룬 TV 다큐멘터리에 등장한 데다 두 차례나 대테러 당국에 신고가 됐는데도 방치돼온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당장 야당인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대표는 집권 보수당의 테리사 메이 총리가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맞서 메이 총리는 테러 조장 가능성이 있는 인터넷 사이트의 강제 폐쇄를 공약하며 진화에 나서는 등 테러가 막판 선거전의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런던경찰청은 최소 7명이 숨지고 48명이 다친 런던 차량ㆍ흉기 테러의 범인 세 명 중 두 명의 신원을 사진과 함께 공개했다. 파키스탄 출신의 영국 시민권자로 런던 동부 바킹 지역에 거주한 쿠람 버트(27)와 역시 바킹 지역에서 지내온 모로코ㆍ리비아 이중국적자 라치드 레두안(30)이다.

이슬람극단주의 TV다큐에 나온 데다 두차례 신고됐는데도 방치돼 #집권 보수당 안보 무능 도마에, 노동당은 메이 총리 사퇴 요구 #다수당 되더라도 현재보다 의석 크게 못 늘리면 하드 브렉시트 차질 빚을 듯

3일(현지시간) 영국 런던브리지와 인근 식당가에서 차량과 흉기를 이용한 테러가 발생한 직후 시민들이 머리에 손을 얹고 현장을 빠져나오고 있다. 올해 들어 영국에서 세 번째 발생한 이 테러로 최소 7명이 숨지고 48명이 다쳤다. [로이터=연합뉴스]

3일(현지시간) 영국 런던브리지와 인근 식당가에서 차량과 흉기를 이용한 테러가 발생한 직후 시민들이 머리에 손을 얹고 현장을 빠져나오고 있다. 올해 들어 영국에서 세 번째 발생한 이 테러로 최소 7명이 숨지고 48명이 다쳤다. [로이터=연합뉴스]

버트는 태어난 지 2주 된 갓난아이와 3살 난 아들을 둔 아빠였고, 범행 일주일 전 이웃을 바비큐 파티에 초대하기도 했다고 가디언이 보도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아스널의 팬으로 테러 당시에도 아스널 셔츠를 입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레두안은 생일이 다른 라치드 엘크다르라는 이름도 써왔다. 나머지 한 명은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영국인 부인과 지내온 20대 후반의 모로코 국적자로 전해졌다.

런던 브리지·버러 마켓 테러범 중 한명으로 경찰이 공개한 쿠람 버트(27). [사진 연합뉴스]

런던 브리지·버러 마켓 테러범 중 한명으로 경찰이 공개한 쿠람 버트(27). [사진 연합뉴스]

버트의 이웃은 그가 아이들에게 급진 사상을 주입하려 한다며 경찰에 신고하기도 했다. 버트의  친구도 그가 극단주의를 정당화하는 모습을 보고 대테러 기관에 신고전화를 했다고 현지 언론에 말했다. BBC 등에 따르면 버트는 영국 내 급진 이슬람단체인 알무하지룬과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버트 등의 테러 움직임을 막아내지 못한 정부의 부실 관리가 도마에 올랐다. 극단주의와의 연관성이 뚜렷한 버트가 왜 영국의 국내담당 정보기관인 MI5와 경찰의 밀착 감시 대상에서 빠졌느냐는 것이다.
야당은 테리사 메이 총리가 과거 내무장관 시절 경찰인력 감소를 지휘했던 점을 부각시키며 연일 맹공을 퍼붓고 있다. 제러미 코빈 대표는 5일 유세에서 “경찰 인력을 2만명 줄일 게 아니라 경찰과 안보 파트에는 필요한 모든 자원을 줘야 한다“며 메이 총리의 사퇴를 요구했다.
메이 총리는 ^극단주의와 테러 계획을 확산하는 인터넷 사이트 접속 중단 조치 ^테러 범죄에 대한 형량 강화 ^무슬림 커뮤니티 단속 강화 등을 내세우며 진화에 나섰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사진 영국 총리실 홈페이지]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사진 영국 총리실 홈페이지]

 이런 가운데 총선 결과에 국제적 관심이 쏠리고 있다.
 보수당이 압승할 경우 메이 총리의 국정 장악력이 확고해지면서 유럽연합(EU)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에서 탈퇴하는 ‘하드 브렉시트’에 힘이 실릴 전망이다. 하지만 보수당이 압승하지 못하면 하드 브렉시트는 동력이 약화된다. 특히 보수당이 과반 달성에 실패하면 메이는 총리직 유지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코빈 노동당 대표는 6일 “총선에서 승리하면 다음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브렉시트 협상의 톤을 재설정하고 EU 시민권자들의 영국 거주를 보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 여론조사 기관들은 대체로 보수당이 가장 많은 의석을 가져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보수당의 압승에서부터 과반 상실 전망까지 기관별 편차가 심하다.
 지난 2~5일 공개된 여론조사들에서 보수당과 노동당간 지지율은 1~12%포인트의 격차를 보였다. 보수당은 현재 하원(650석)에서 절반보다 6석 많은 330석으로 과반을 점하고 있다.
 선거 결과는 노동당 지지 성향이 강한 젊은층의 투표율이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제러미 코빈 영국 노동당 대표 [페이스북]

제러미 코빈 영국 노동당 대표 [페이스북]

 메이 총리의 정치적 운명과 브렉시트의 방향을 결정할 영국 총선 투표는 8일 오후 10시까지 진행된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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