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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달의 예술 - 문학

새롭게 그 자리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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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황현산문학평론가·고려대 명예교수

황현산문학평론가·고려대 명예교수

이른바 ‘순수’를 지향하는 시적 사고는 늘 인간 인식의 한계를 말하려 하며, 그러기 위해 대개 두 가지 방식 가운데 하나를 취한다. 먼저 끝없는 부정의 방식이 있다. 이것도 그것이 아니고 저것도 그것이 아니라는 식으로 아닌 것들을 끝없이 열거하여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것의 거대하거나 미묘한 성질을 미루어 짐작하게 하는 방식이다.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인 말라르메가 그 방식을 썼다. 그의 시는 난해하지만 갈래를 지어 해석해 놓고 보면 이 세계 전체를 벗어나는 것만 같은 어떤 빈 바탕, 불자들이 흔히 말하는 ‘공’에 관해 말하고 있다. 뺄셈의 방식이라고 부를 만하다.

신영배 시집 『그 숲에서 당신을 …』

그러나 비어 있음이 곧 이 세계요, 이 세계가 곧 비어 있음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반대로 덧셈의 방식을 쓰는 시인들이 있다. 말하려는 그것을 다 말할 수는 없지만, 이것도 그것이며 저것도 그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용운의 시 ‘알 수 없어요’를 생각해 보면 이 방식을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임’을 필설로 형언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모든 것이 그 임의 얼굴이고 숨결이고 발자취다. 끝없는 긍정의 시학이다.

이 두 방식을 연결시키고 싶은 시인들은 자주 물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개울의 물은 끊임없이 흐르지만 늘 거기에 있다. 바닷물은 쉬지 않고 출렁이며, 때로는 노호하고 때로는 수정같이 잔잔하지만 그 끊임없는 운동으로 늘 변함없는 하나의 얼굴을 유지한다. 이 세기의 초에 지금은 없어진 시 잡지 ‘포에지’로 등단했던 시인 신영배는 새 시집 『그 숲에서 당신을 만날까』에서 스스로 만든 말, 때로는 부사이고 때로는 명사인 ‘물랑’으로 물의 그 끝없는 변화에 관해 말하려 한다.

2001년 등단한 신영배 시인. 물로 상징되는 여성성을 꾸준하게 탐구해왔다. [사진 문학과지성사]

2001년 등단한 신영배 시인. 물로 상징되는 여성성을 꾸준하게 탐구해왔다. [사진 문학과지성사]

‘물랑’은 ‘물렁’의 ‘물’과 ‘말랑’의 ‘랑’을 합친 말 같지만, 실제로는 물의 모든 성질을 포괄하는 낱말이다. 이 낱말은 스스로 물이면서 동시에 물의 모든 현상과 운동에 참여하여 우리의 생명과 삶을 물로 바꾼다. 이 ‘물랑’이 닿는 곳에서 나의 존재는 그 질을 바꾸어 세계 속으로, 또는 밖으로 사라진다. 그러나 또한 항상 거기 있다. ‘물랑’이라는 말을 끼고 그만큼 자주 나타나는 ‘소녀’는 날마다 사라지는 존재이면서 늘 새로워져서 다시 태어나는 존재다.

‘끝을 안으면 가슴이 다시 생기는 기분/같이 살고 싶다/끝을 읽으면 시를 쓰는 밤들이 늘어나지/물랑물랑/끝내 그녀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

시 ‘그녀의 끝’의 마지막 여섯 개 시구다. 시 전체를 읽어보면 ‘그녀’는 시일 것이다. 바다처럼 끊임없이 변화하기에 실상은 변화함이 없이 늘 그 자리를 지키는 존재는 시인이 보기에 시밖에 없을 것이다. 시는 일각도 쉬지 않고 다시 쓰이기를 거듭하지만 시는 늘 같은 얼굴을 들고 거기 있다. 그것이 ‘물랑’한 것들의 비밀이다. 시로 바뀌면서 시로 다시 태어나는 삶은 수몰된 마을과 같다. 삶은 시에 덮여 물처럼 액화하고 물처럼 기화하지만, 그 물을 흔들고 시 밖으로 다시 안개처럼 피어오른다.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