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박찬욱·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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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그로테스크 예찬
이창우 지음, 그린비
400쪽, 2만5000원

그로테스크는 본디 ‘우스꽝스러운 것, 추하고 혐오스러운 것, 기형, 낯선 것, 비정상’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닌다. 문화연구학자이자 영화학자인 지은이는 그로테스크가 지난 15년간 한국영화의 도도한 흐름을 이루며 문화코드로 자리 잡았다고 지적한다. 자신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이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주도한 봉준호·박찬욱·장준환·김지운 감독의 냉소적 작품을 이유도 모르고 좋아했는데, 알고 보니 그로테스크하기 때문이었다고 풀이한다.

지은이는 한국영화에서 그로테스크가 중요한 건 대량해고 등 21세기와 함께 시작된 뒤틀린 현실과 시대전환기 사회혼란의 감정을 담아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그로테스크는 체제변화 속에서 고통받는 대중의 상황과 연결되면서 하나의 정치적 코드로 작용했다.

지은이는 그런 한국영화를 레이몬드 윌리엄스, 발터 벤야민,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 앨런 화이트 등 문화연구 이론가들의 틀을 통해 들여다 봤다. 1960~70년대의 고도성장·개발독재는 김기영·하길종 감독의 작품을, 90년대 권위주의와 신자유주의로의 전환은 박철수·김지운 감독의 영화를 통해 맥을 짚었다. 2000년대 초반 신자유주의 확산 등 사회변동은 박찬욱·봉준호·장준환·김기덕 감독의 작품으로 살펴봤다.

이런 작업을 통해 사회적 구조조정기가 계급지배·권위주의·노동운동·이성애의 질서와 융합해 ‘괴물’로 표출되는 과정을 추적했다. 지은이는 한국영화의 그로테스크는 진흙탕이 된 사회의 실상과 거기에서 탈출할 실마리를 응축한 문화적 암호라고 지적한다. 세계사적 전환의 미학적 반영이었다.

채인택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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