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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포럼] 장관들의 우울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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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청와대 정문 앞에 있는 분수대를 빙 돌아가면 어김없이 피켓을 든 몇명의 시위자가 매일 나타난다. 정문에서 불과 40여m 떨어진 지점까지 접근해서 각자의 주장을 서슴없이 편다. 어떤 여성은 거의 일주일을 버티기도 한다.

그들의 피켓에는 무슨 무슨 위원회의 위원 선정의 부당함이나 판.검사의 비리를 주장하는 구절이 적혀 있기도 하고 특정 언론에 대한 비판에서부터 신항만 및 교각의 작명에 이르기까지 시정을 촉구하는 내용이 나열돼 있다.

이들 시위자가 청와대 정문 부근까지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지난 봄부터의 일이다. 그 전에는 청와대 정문에서 3백m 정도 떨어진 효자동 입구가 통제선이었다.

이제는 정문과 후문 쪽에 쳐있던 바리케이드도 철거됐다. 누구나 청와대 코앞에서도 1인 시위를 벌일 수 있을 만큼 의사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1인 시위는 서울시청의 본관 출입구가 비좁게 보일 만큼 요란한 피켓으로 장식하는 경우도 있고 경찰청 등 권력기관의 정문 옆 담벼락에 의지하며 분노의 표정으로 호소하는 일도 허다하다.

이들 민원인의 읍소나 탄원이 해당 기관의 최고 책임자에게 전달되기나 하는지 또는 아예 무시되는 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국민은 억울하거나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일이 풀리지 않으면 권력기관의 정문을 서성거린다.

전자 정부를 지향하며 신속한 민원처리를 강조하고 있는 참여정부에서 1인 시위가 이처럼 두드러진 것은 책임자와의 직접대화 욕구와 잘못됐다고 생각되는 문제를 널리 알리고 싶어서일 것이다.

그들은 세상사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요구하고 당치않은 부분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고 있다. 사회 공기로서의 언론의 역할이 더욱 강조될 수밖에 없다.

어느 고위 공직자의 이야기다. 정부 정책을 소상히 알리고 구체적 실천에 따른 문제점에 대해 국민의 이해를 구하자면 언론과의 잦은 접촉이 불가피하단다.

미국과 유럽에서 보듯 권력자들에게 언론인은 때로 '폭도'이며 '이리'이고 '맹수'로 묘사되지만 그러나 민주주의는 그들을 필요로 한다. 분야마다 국민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부딪치는 현실에서 단순한 언론 브리핑이나 1차 자료 공급만으로는 전체 그림의 절반도 전달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청와대가 생각하는 대언론 코드가 사실상 언론인과의 공식적인 접촉 횟수를 줄이거나 비공식적 접촉을 아예 차단시키고 있다. 고급 공무원들의 언론대응이나 활용기술이 폐쇄적이고 부정적일수록 정보의 전달과 파악이 더뎌지고 왜곡되기 쉽다. 과장급 공직자들의 대 언론인 기피현상은 놀라울 만하다.

청와대나 각 부처 및 갖가지 위원회 운영이 보이고 있는 혼선이 국민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다. 산업경쟁력을 앞세운 경영인이나 농민도 자존심을 상했고 언론인도 그렇다. 일부 장관들도 시장에서 '말'이 먹히지 않는 데 대해 자존심 상했다. 그들은 참으로 우울하다.

2001년 미국에서 발행된 '체인지 몬스터(Change Monster.지니 대니얼 덕 著)'라는 책은 개혁이 시도될 때마다 이를 방해하고 좌절시키는 유.무형의 장애물을 분석하면서 인간관계와 감정적 역학관계라는 틀에서 문제를 풀어나가라고 충고했다.

리더와 구성원 간의 직접적인 대화를 강조하되 추상적인 비전이나 구호.슬로건을 버리라고 요구했다. 오늘의 개혁을 내일의 성역으로 둔갑시키지 말고 매사에 의문을 제기하되 챔피언을 격려하라고 했다.

그런데 참여정부의 챔피언인 장관들은 왜 우울한가. 그들이 당당하게 언론과 맞대면할 수 있도록 용기와 권한을 주라. 언론은 수많은 1인 시위자를 대변한다.

최철주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