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추 하나가 바꿔놓은 세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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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근현대 복식, 단추로 풀다' 특별전에 나온 20세기 여성 드레스. 가운데 작품이 폴 푸아레의 '멜로디 드레스'다. [사진 뉴시스]

'프랑스 근현대 복식, 단추로 풀다' 특별전에 나온 20세기 여성 드레스. 가운데 작품이 폴 푸아레의 '멜로디 드레스'다. [사진 뉴시스]

20세기 초반 프랑스 패션계를 지배했던 디자이너 폴 푸아레(1879~1944). ‘패션의 왕’을 자부했던 그는 여성들을 몸에 꽉 끼는 코르셋에서 해방시킨 디자이너로 유명하다. 그의 작품 중에 ‘멜로디 드레스’가 있다. 마치 가운처럼 걸치는 웃옷 목 부분에 오직 단추 하나만을 달았다. 단추를 풀면 상반신을 가볍게 움직일 수 있다. 여성의 신체적 자유에 집중했다. 국립중앙박물관 백승미 학예사는 “단추 하나로 옷의 구성을 바꿀 수 있다는 걸을 보여준다. 전혀 다른 옷이 됐다”고 말했다.

'단추의 황금기'로 불린 18세기의 프랑스 단추. 인물의 초상이나 동식물 모양, 그리고 프랑스혁명 정신을 그려넣었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단추의 황금기'로 불린 18세기의 프랑스 단추. 인물의 초상이나 동식물 모양, 그리고 프랑스혁명 정신을 그려넣었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시대를 올라가보자. 18세기는 ‘단추의 황금기’로 불린다. 당시 유럽 궁정문화를 이끌었던 프랑스에서 단추는 부과 권력의 상징물이었다. 옷을 여미는 본래 기능 대신 화려한 장식 수단으로 활용됐다. 왕실·귀족이 경쟁적으로 주문·제작한 단추는 값비싼 옷보다 더욱 귀하게 거래됐다. 단추의 종류도 다양했다. 초상화·풍자화 등이 작은 단추 안으로 들어갔고, 광물·식물·동물 등도 단추의 주인공이 됐다. 일명 ‘뷔퐁’ 단추다. 프랑스 혁명 이념을 형상화한 단추도 제작됐다. 단추가 시대정신의 표상처럼 활용됐다.
 그냥 사소하게 넘겨버릴 수 있는 단추. 하지만 그 안에는 인간의 또 다른 욕망이 들어 있다. 우리가 지내온 역사를 보여주는 거울과 같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30일 개막하는 특별전 ‘프랑스 근현대 복식, 단추로 풀다’의 얼개다. 단추라는 작고 평범한 물건을 잣대로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 프랑스 복식사, 나아가 프랑스 문화사를 돌아보는 독특한 자리다. 패션 전문가뿐 아니라 옷과 일상의 관계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번 둘러볼 가치가 충분하다.

29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프랑스 근현대 복식, 단추로 풀다' 언론공개회에서 참석자들이 전시품을 관람하고 있다. [뉴시스] 

29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프랑스 근현대 복식, 단추로 풀다' 언론공개회에서 참석자들이 전시품을 관람하고 있다. [뉴시스]

 전시는 아기자기하다. 단추를 중심으로 의복·회화·판화·서적·공예등 1800여 점이 출품됐다. 역사라는 거창한 명제를 단추라는 작은 물건으로 들여다본 미시사 연구, 생활사 연구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영훈 국립중앙박물관장은 “프랑스 문화를 더욱 폭넓게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귀족의 전유물 비슷했던 단추가 대중화된 것 역시 19세기 산업혁명 이후다. 방직·의류산업이 발전하면서 복식문화에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소수 전문가 집단(길드)이 만들었던 단추도 대량생산 체제로 접어들었다. 군복·작업복·교복 등 이른바 제복(유니폼)이 직업이나 소속을 드러내는 징표로 기능했다. 단추를 매는 법, 푸는 법을 둘러싸고 논쟁이 일었고 그와 관련된 남성들의 예절도 자리를 잡았다. 단추산업이란 말도 생겼다. 1878년 프랑스에서만 3만여 명이 단추산업에 종사했다는 통계가 있다.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공예작가 프랑수아 위고가 디자이너 엘자 스키아팔렐리를 위해 만든 여러 모양의 단추들. 박정호 기자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공예작가 프랑수아 위고가 디자이너 엘자 스키아팔렐리를 위해 만든 여러 모양의 단추들. 박정호 기자

 20세기에는 단추의 예술화가 진행됐다. 단추가 의상 디자인의 주요 요소로 떠올랐다. 특정 예술가들의 개성을 보여주는 상징물 비슷하게 기능했다. 대표적인 작가가 프랑수아 위고(1899~1981)다.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증손자인 그는 고급 맟춤복을 위한 다양한 단추를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디자이너 코코 샤넬의 경쟁자였단 엘자 스키아파렐리와 각별한 협업 관계를 유지했다. 1930년대 프랑스에는 자수업자, 깃털공예가, 구두 제작자, 단추 제작자 등 전문적인 기술을 가진 장인을 ‘팔리뤼에’라고 불렀다.
 이번에 소개된 전시품이 모두 단추수집가 로익 알리오(66)의 컬렉션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그가 하나 둘씩 모아온 단추는 프랑스 중요문화자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전시장 마지막 공간에 단추에 대한 알리의 열정을 보여주는 작은 공간이 마련됐다. 이번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과 프랑스 장식예술박물관이 공동 기획했다. 8월 15일까지 열리며, 이후 9월 9일부터 12월 3일까지 국립대구박물관에서 계속된다.
 박정호 문화전문기자
 jhlogos@joongang.co.kr

평범한 단추로 보는 프랑스 문화사 #20일부터 국립중앙박물관서 전시 #단추와 옷, 옷과 역사 관계 돌아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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