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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수발 내가 다 들었는데 …” 소송도 불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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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3호 07면

또 다른 갈등 요인, 기여분

부모 사망 후 상속재산을 제대로 나누지 못해 벌어지는 자녀들 간 다툼이 크게 늘고 있다. 대법원에 따르면 상속재산분할 심판 청구는 2012년 594건에서 지난해 1223건으로 급증했다. 상속재산을 나누는 방법과 각자의 지분율을 두고 합의하지 못해 법원 문턱을 드나들게 된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법정 상속분대로 합의 잘 안 돼 #부양 노고 강조한 기여분 주장 #法, 통상의 부양은 기여분 불인정 #효도부양 인정하게 법 개정 필요

법정 상속분은 정해져 있는데 왜 합의가 어려울까. 부모 부양과 사전 증여를 둘러싼 자녀들 간 미묘한 입장 차이가 실질적 원인이라는 것이 가족법 실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민법상 상속지분은 배우자가 1.5이고 자녀들은 1로 동일하다. 하지만 부모 재산에 대한 기여도, 사전에 얼마나 증여받았는지, 부모를 누가 봉양했는지와 관련해 법정 상속분보다 더 받겠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에 자체적인 합의가 어렵다는 얘기다. 사봉관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는 “부모를 부양한 쪽에선 ‘병수발 다 들고 대소변 다 받아 드렸는데 어떻게 똑같이 나눠 갖냐’고 말하고 다른 쪽에선 ‘그 덕분에 집에 같이 얹혀 살고 생활비도 함께 쓰지 않았냐’고 반박하기 시작하면 합의를 보기가 어렵다. 그간 섭섭했던 일들을 토로하면서 감정싸움을 하다 지쳐 소송에 이르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상속재산분할을 청구하는 이들 중 상당수가 기여분을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의 일이다. 기여분은 피상속인(상속재산 원소유주)을 특별히 잘 봉양했거나 재산 유지에 상당히 기여한 경우 법정 상속분보다 더 가산해 상속재산을 받을 수 있게 해주는 제도다. 중앙SUNDAY가 지난해 서울가정법원과 부산가정법원 두 곳에서 선고된 상속재산분할심판 결정문 54건을 분석한 결과 이 중 30건에서 기여분 주장이 나왔다. 부모를 특별히 봉양했다는 주장이 76.7%로 가장 많았고 재산 형성에 기여했다는 주장은 13.3%였다. 기여분을 주장한 쪽은 아들이 47.1%였다. 피상속인의 배우자는 26.5%, 딸은 20.6%였다.

주장은 많이 하지만 쉽게 인정되지는 않는다. 본지 조사 결과 법원은 30건 중 19건에서 기여분 신청을 기각했다. 8남매를 둔 A씨 자녀들의 분쟁이 그 예다. A씨는 2014년 사망하면서 집 한 채를 남겼다. 당시 시가는 1억3000만원이었다. 자녀들은 이를 나누려 했지만 합의하지 못했다. 장남(61)이 “아버지를 부양했다”며 80%의 지분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다른 형제들은 장남이 1996년 아버지로부터 1만5000㎡(4500여 평) 규모 부동산을 증여받은 점을 거론하며 맞섰다. 결국 장남은 법원에 기여분 결정 및 상속재산분할을 청구했다. 아버지 병원비 400여만원을 부담하는 등 그간의 기여를 인정해 달라는 취지에서였다. 하지만 법원은 자녀라면 해야 할 통상적 부양의무를 이행한 것만으로는 법정 상속분을 조정할 수 없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장남에게 주요 재산이 사전에 증여된 점을 고려해 상속지분을 0으로 조정했다. 서울가정법원 가사2부는 지난해 10월 “사전 증여를 받은 장남을 제외한 나머지 형제들이 부동산의 지분을 7분의 1씩 공유하라”고 결정했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 기여분이 인정될까. 부산가정법원은 지난해 11월 김모(68)씨에게 기여분 30%를 인정했다. 김씨는 96년부터 돌아가신 2014년까지 아버지와 같이 살며 부양했다. 또 집 수선비와 공사비도 부담했다. 김씨의 아내는 시아버지를 모셔온 점을 인정받아 마을회에서 효행상을 받기도 했다. 이미정 부산가정법원 공보판사는 “공동상속인 사이 공평을 위해 상속분을 조정할 필요가 있을 정도로 특별한 기여를 해야만 인정된다. 통상적 범위에서 자녀가 부모를 부양하는 경우라면 법률적 의미에서 기여라고 평가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배우자의 경우 자녀들보다는 인정이 잘되는 편이다. 사망한 배우자의 재산에 대한 기여가 자녀들에 비해 높다는 점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서울가정법원이 지난해 7월 기여분 40%를 인정한 B씨(71) 사건이 그렇다. B씨의 남편은 2014년 사망하면서 3억여원 상당의 집을 남겼다. 법원은 B씨가 ▶45년의 혼인 기간 동안 남편과 함께 과일장사를 한 점 ▶남편이 쓰러진 뒤 홀로 청소일로 생계를 유지한 점 ▶사망 시점까지 간병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재판부는 “집은 B씨 소유로 하고 자녀 3명에게 4000여만원씩 정산금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기여분 인정 비율은 25%에서 100%까지 다양했다. 서울가정법원에서 실무를 담당하는 한 판사의 설명이다. “기여분을 인정하는 사례는 주로 세 가지로 정리된다. 우선 피상속인을 장기간 전업으로 간호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또 부모와 사업을 같이 하는 자녀도 인정할 여지가 많다. 특히 부모가 월급을 제대로 주지 않는 등 정당한 대우를 하지 않았을 때가 그렇다. 마지막으로 다른 자녀들이 외국에 오랫동안 나가 있는 상황에 본인만 적극적으로 부모를 부양한 경우도 해당된다.”

전문가들은 상속재산 관련 분쟁을 줄이기 위해 기여분을 산정할 때 부양과 관련한 부분을 보다 명확히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고령화되는 사회에서 갈수록 부양의 중요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임채웅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기여분 관련 법 조항에 ‘효도 부양’을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해볼 만하다. 지금은 법관의 재량에 맡겨져 있지만 부모를 모시는 자녀 같은 경우엔 확실히 혜택이 돌아가도록 명시적 규정을 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우병창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기여분 제도 취지는 좋지만 실제 제대로 부양하지 않은 이들이 욕심을 부리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 부작용에 대비한 별도 규정을 만들어 분쟁을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민제 기자, 조수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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