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관광객, 개성공단 근로자 돌발 상황 대책까지 세워놨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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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돌발 사태로 남북관계가 위기에 빠지면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남측 근로자 550여 명과 금강산 관광객 1000여 명이 억류될 수 있습니다. 결코 닥쳐서는 안될 상황이지만 대비책은 있습니다."

국가 차원의 위기상황 대응책을 만들고 실행을 지휘하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위기관리센터 안철현(47) 사회위기관리팀장. 3급 국장급으로 정부 내 위기관리의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그는 테러.재난 등 국가위기 대응체계를 체계화한 공로로 8일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3년 가까운 작업 끝에 국가 위기상황을 32개 유형으로 나누고 이에 따른 272개의 구체적인 대응방안을 매뉴얼 형태로 완성하는 작업을 주도한 것이다.

안 팀장은 "일본 극우파들이 독도를 점령했을 경우 정부 차원의 비책이 있다"고 밝혔다. 화학약품 공장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할 경우 사고 규모나 풍향.풍속 등을 실시간으로 종합해 예상 피해나 복구책을 마련하는 컴퓨터 시뮬레이션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매뉴얼의 내용은 물론이고 제목 자체가 공개되면 안될 정도의 극비 사항이 대부분"이라고 귀띔했다. 대북 급변사태 메뉴얼은 북한을 자극할 우려가 있는 데다 고속철(KTX)이나 정수장 등에 대한 테러 대비책에는 취약점까지 제시돼 있어 노출될 경우 치명적 피해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안 팀장은 위기관리 분야에서 국내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국가정보원에서 13년 동안 정보 분석관으로 일하다 위기관리 대응이 좀더 짜임새 있게 이뤄져야 하겠다는 판단에 따라 2000년 1월 직장생활을 접고 대학원에서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등을 공부했다. 미국계 반도체 회사의 위기관리 자문역을 거쳐 위기관리 전문 컨설팅업체도 운영했었다. 하지만 퇴직금을 포함한 5억여원의 재산을 모두 날렸다고 한다. 그는 "위기관리에 대한 국내 기업들의 인식이 너무나 안일해서 그렇게 된 것 같다"고 말한다.

그는 2003년 4월 NSC 위기관리센터가 문을 열면서 다시 공직에 들어갔다. 그러나 정부수립 60년이 다 되도록 문서화된 위기관리 종합대책이 단 한 건도 없다는 사실에 너무 놀랐다고 한다.

안 팀장은 "중앙정부 차원의 위기관리 시스템이 없는 중국에서 우리 사례를 벤치마킹하겠다고 알려와 최근 중국 측에 브리핑을 해줬다"면서 "독일 등 선진국까지 부러워하는 우리의 시스템을 관계자들이 잘 운영하도록 만드는 게 남은 과제"라고 말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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