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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남정호의 시시각각

문재인-트럼프 만남이 걱정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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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남정호 논설위원

남정호 논설위원

잘만 하면 굵직한 외교 현안을 풀어줄 거라는 문재인-트럼프 간 한·미 정상회담이 다음달 말로 잡혔다. 빨리 만나라는 여론 때문인지 문재인 대통령은 어느 전임자보다 빨리 미국 대통령을 만나게 됐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우려의 눈길도 적잖다.

괴팍한 성격에 어찌 나올지 몰라 #감성적 고리 찾아 집중 공략해야

우선 괴팍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성격이 걸린다. 그간 트럼프는 여러 정상과 접촉했다. 부드럽게 끝나기도 했지만 재앙이 된 경우도 여럿이다. 취임 8일 만에 한 맬컴 턴불 호주 총리와의 통화가 그랬다. 트럼프는 턴불 총리가 “전 정권과의 합의대로 호주 내 난민 1200여 명을 미국에 보내겠다”고 하자 불같이 화를 냈다. “이건 빌어먹을 최악의 통화야”라고 고함치며 예정된 1시간의 반도 안 되는 25분 만에 전화를 끊었다. 있을 수 없는 결례다. 지난 3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의 정상회담도 최악이었다.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냉랭한 분위기를 보다 못한 기자가 “손이라도 잡아라”고 외쳤다. 마지못해 메르켈이 “악수 한번 할까”라고 말을 건넸지만 트럼프는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못 들은 척했다. 알고 보니 회담 직전 트럼프가 “밀린 나토 분담금 3000억 달러(약 330여조원)를 내라”는 청구서를 내민 탓이었다. 이런 그가 문 대통령에게 어찌 나올까 두렵다.

둘째로 준비 기간이 빠듯하다. 역대 최악이라는 2001년 김대중-부시 간 정상회담도 서두른 탓이 컸다. 김 대통령은 햇볕정책을 알려야 한다는 조바심에 막 취임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만났다가 큰 낭패를 봤다. 부시에게 “북한을 지원해야 한다”고 가르치러 들다 “주민을 굶겨 죽이는 독재자를 왜 돕느냐”는 부시의 거센 반발을 샀다.

셋째로 문재인-트럼프 간 ‘케미스트리(chemistry)’도 또 다른 걱정이다. 진보 정권의 지도자치고 미 공화당 대통령과 사이가 좋은 적이 없었다. 김 대통령이 그랬고, 노무현 대통령 역시 “한국전쟁 때 미국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나는 지금쯤 정치범 수용소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파격적인 말까지 했지만 끝내 부시와는 냉랭했다.

그럼 어떻게 하나. 역대 최고로 꼽히는 국가 지도자 간 만남은 1998년 한·일 정상회담이다. 이를 통해 양국은 미래지향적 ‘한·일 파트너십 선언’을 끌어냈다. 한데 회담의 한국 측 주인공은 부시와 최악의 만남을 가졌던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도대체 뭐가 달랐던 걸까. 성공 비결은 철저한 준비에 있었다. 당시 외교부는 보통 3~4개월에 끝내던 회담 준비를 8개월간 했다고 한다. 문재인-트럼프 간 첫 만남까지는 한 달밖에 안 남았지만 이번 회담이 성공하려면 모자란 시간을 벌충할 만큼 철저한 준비가 절대적이란 얘기다.

때론 개인적 취향이 호불호를 결정한다는 점도 명심할 대목이다. 전임자에겐 싸늘했던 부시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홀딱 빠진 이유는 기도 덕이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부시는 “식전 기도를 올리는 이 대통령 내외의 모습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트럼프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만남이 성공한 데는 골프가 일등공신이었다. 트럼프는 취임 후에도 5.4일에 한 번꼴로 칠 정도로 역대 어느 전임자보다 골프광이다. 이런 그에게 아베는 420만원짜리 골프채를 선물하고 27홀을 함께 돌았다. 사이가 틀어질 리 없었다.

트럼프는 비즈니스를 통한 경험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인간관계에 크게 신경을 쓴다고 한다. 상대가 누구든 격에 맞게 대했던 버락 오바마와는 정반대다. 불행히도 문 대통령은 골프를 즐기지 않는다. 기도로 트럼프의 마음을 살 수도 없다. 자칭 기독교인 트럼프가 독실하지 않은 탓이다.

그렇다고 포기해선 안 된다. 당국은 어떻게든 두 정상 간의 감성적 고리를 찾아내 이곳을 공략할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좋든 싫든 일본과 비교하는 게 우리의 타성이다. 자칫하면 “아베는 잘했는데 문 대통령은 이게 뭐냐”는 소리가 나올 거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남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