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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3사, 시청자의 선택권 빼앗지 말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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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송지훈 기자 중앙일보 스포츠부 차장
송지훈스포츠부 기자

송지훈스포츠부 기자

방송사는 종종 대형 스포츠 이벤트를 생중계한다. 그런데 생중계의 질과 양이 미흡해도, 필요 이상으로 과해도 문제가 된다. 그래서 중요한 게 원칙과 합의다. 방송사들끼리 생중계가 필요한 이슈인지 중요도를 따진 뒤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하고, 그에 맞게 역할을 나눠 중계해야 전파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지난 20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기니의 20세 이하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 A조 1차전은 방송 관계자들 사이에서 ‘전파 낭비’의 대표적 사례로 거론됐다. 시청률 총합이 22.2%(닐슨코리아 집계)로 제법 높게 나왔지만, 지상파 3사(KBS·MBC·SBS)가 모두 생중계에 뛰어든 탓에 회사별 시청률은 모두 한 자릿수에 그쳤다. KBS 1TV가 9.4%로 가장 높았고, SBS와 MBC는 나란히 6.4%를 기록했다.

이후 경기 생중계 일정은 들쭉날쭉하다. 오는 23일 아르헨티나와의 A조 2차전은 KBS1을 제외한 나머지 두 방송사가 생중계를 포기했다. 기니전에서 기록한 6%대의 시청률에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6일 잉글랜드와의 조별리그 최종전은 다시 3사 경쟁 구도로 회귀할 전망이다. 한 방송 관계자는 “두 회사가 3차전을 다시 생중계하려는 이유는 한국 20세 이하 대표팀이 16강행을 확정 짓는 경기인 만큼 시청률이 오를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방송사들은 16강 이후 중계 일정 역시 시청률 추이를 지켜본 뒤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일러스트=박용석]

[일러스트=박용석]

이번 대회를 앞두고 지상파 3사는 합리적인 중계 방식을 찾아보자며 여러 차례 머리를 맞댔다. ▶매 경기 3사 공동 중계 ▶경기당 2사씩 번갈아 중계 ▶경기당 1개사씩 돌아가며 중계 등의 방안을 논의했다. 하지만 서로 간의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한 채 개막 직전까지 합의에 실패했다. 결국 3사 간 공조 없이 각 사가 경기 생중계 여부를 자체적으로 판단키로 했다. 사실상 각자도생(各自圖生·제각기 생존할 방법을 도모함)을 선택한 셈이다.

시청률을 의식한 방송사들의 이기주의에 피해를 보는 건 결국 시청자들이다. 지난 20일 기니와의 경기 때가 그랬듯 지상파 3사는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화면을 내보냈다. 주말 황금시간대에 시청자들의 선택권을 박탈한 셈이다. 비단 이번 대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내년에는 평창 겨울올림픽과 러시아 월드컵 본선,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등 굵직한 글로벌 스포츠 이벤트가 줄줄이 열린다. 원칙 없는 생중계 편성이 반복될 경우 국내 스포츠 중계 시장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원칙’과 ‘기준’은 정치·경제·사회뿐만 아니라 스포츠 중계에서도 중요한 키워드다.

송지훈 스포츠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