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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에 구명조끼 양보한 고창석 선생님, 마침내 돌아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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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세월호 미수습자 중 처음으로 신원이 확인된 단원고 교사 고(故) 고창석씨의 생전 모습. 침몰 해역에서 유골이 발견된 지 12일 만에 DNA 판독 결과가 나왔다. [연합뉴스]

세월호 미수습자 중 처음으로 신원이 확인된 단원고 교사 고(故) 고창석씨의 생전 모습. 침몰 해역에서 유골이 발견된 지 12일 만에DNA 판독 결과가 나왔다. [연합뉴스]

“말로 표현하기 어렵네요. 한 조각의 뼈로 (돌아온 남편을)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세월호 미수습자 유골 첫 확인 #꼬박 1127일 기다려온 아내 #“한 조각의 뼈로 돌아온 남편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 #기사 쓰면 교사 고창석을 써달라”

세월호 미수습자 9명 중 처음으로 신원이 확인된 단원고 교사 고창석(당시 40세)씨의 아내 민모(38)씨는 17일 기자에게 보낸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에서 1127일 동안 기다려온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러면서 “남편의 유해도 아직 모두 수습하지 못했고, (가족의 유해를 전혀) 수습하지 못한 가족들도 있다”며 에둘러 인터뷰를 거절했다. 하지만 민씨는 문자메시지로 “기사를 쓴다면 교사 고창석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으면 좋겠다”며 “지난 스승의 날은 너무 가슴 아픈 날이었다”고 덧붙였다.

고씨는 ‘아내 바보’로 유명했다. 민씨는 단원고와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둔 단원중학교 교사였다. 고씨는 담장 너머로 아내에게 간식을 건네고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엔 꽃을 보내는 로맨티스트이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당일 아침 아내에게 “애들을 돌보느라 고생했다. 미안하다”는 문자메시지를 마지막으로 남겼다.

고씨는 2014년 3월 단원고 체육 교사로 발령받은 지 한 달여 만에 세월호 참사로 변을 당했다. 대학 시절 인명 구조 아르바이트를 했을 정도로 수영 등 운동신경이 남달랐던 그였다. 그러나 물이 차오르는 배에서 그는 탈출하지 않았다. 오히려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양보하며 “먼저 입고 배를 빠져나가라”고 했다. 고씨의 마지막 모습은 학생들이 있던 4층 객실에서 목격됐다. “빨리 배에서 탈출하라”고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한 생존 학생은 “구명조끼를 챙겨 입으라고 처음 지시한 사람은 선장이 아니라 선생님이셨다”고 말했다.

고씨와 함께 근무했던 김덕영(40) 교사는 “학생 눈높이에 맞춰 교육해 학생부 교사인데도 제자들이 많이 따랐다”며 “성격도 좋아 부임한 지 한 달도 안 돼 동료 교사에게 친한 형님으로 불렸다”고 말했다.

고씨의 것으로 17일 확인된 유골은 지난 5일 발견된 뼈 1점이다. 침몰한 세월호 선체와 닿았던 해저면 특별수색구역에서 잠수사들이 호미로 땅을 파다 발견했다. 신원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유전자(DNA) 분석을 한 지 12일 만에 확인됐다. 당초 예상했던 1개월가량보다 짧았다.

침몰 해역서 발견 12일 만에 DNA 판독

일반적으로 뼈의 DNA 분석에는 3∼4주가 걸린다. DNA 분석을 위해선 뼈의 단단한 부위(칼슘 성분)는 방해가 된다. 이를 제거해 뼈를 말랑말랑한 상태로 만들어야 분석에 필요한 샘플을 추출할 수 있다. 이를 탈칼슘화라고 부르는데 여기에만 통상 2∼3주 정도가 소요된다. 이양한 국과수 법유전자과장은 “빠른 분석을 위해 뼈 전체가 아닌 탈칼슘화가 진행된 부분에서 먼저 샘플을 채취하는 방법을 계속해 기간을 단축했다”며 “해당 뼈의 상태가 양호해 신원 확인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세월호 선체에서 발견된 사람 뼈 추정 유골에 대한 신원 확인 작업도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0일 4층 선미에서 뼈 2점이 발견된 이후 17일까지 선체 3층과 4층에서 8일 연속 유골이 발견되고 있다. 유골 중엔 두개골(머리뼈)과 치아 등 육안으로 신원 추정이 가능한 것도 있다. 이양한 과장은 “두개골과 치아도 정확한 DNA 분석을 위해선 탈칼슘화 과정을 거쳐야 해 시간이 걸린다”면서도 “발견된 유골의 상태가 좋다면 분석 기간을 앞당길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수중 수색에선 사람 뼈로 추정되는 유골은 고씨의 것 외에 발견되지 않고 있다. 잠수사를 통한 40개 구역의 수중 수색 작업이 끝나면, 수중음파탐지기(소나)를 이용한 수색이 이뤄진다. 소나가 유실물을 탐지하면 잠수사가 해당 지역을 가는 방식이다. 마지막 단계엔 유실물이 걸려 있을 수 있는 펜스 테두리 1.5m 반경을 수색한다.

지난달 9일 시작된 수중 수색에 예정된 기간은 2개월로, 다음달 초 종료될 예정이다. 이철조 세월호 현장수습본부장은 “선체 내부 수색 상황과 신원 확인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수중 수색 작업을 보강해 이어갈지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수습본부는 선체 천장에 구멍을 뚫거나 외벽을 절단하는 작업을 통해 진입로를 넓혀 4층과 3층 지역에 대한 수색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남은 세월호 미수습자는 단원고 학생인 조은화·허다윤양과 박영인·남현철군, 단원고 교사 양승진씨, 일반인 승객인 권재근씨·혁규군 부자, 이영숙씨다.

이승호 기자, 인천=최모란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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