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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이 대표단 직접 초청, 사드 경색 풀 해법 나올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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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1호 04면

다시 시동 걸리는 대중국 외교

박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단장으로 하는 정부 대표단이 1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김포공항 출국장으로 향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정 민주당 의원, 임성남 외교부 1차관, 박 의원, 박광온 민주당 의원. 김현동 기자

박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단장으로 하는 정부 대표단이 1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김포공항 출국장으로 향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정 민주당 의원, 임성남 외교부 1차관, 박 의원, 박광온 민주당 의원. 김현동 기자

자료: 중국 상무부 등 종합

자료: 중국 상무부 등 종합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문제로 경색됐던 한·중 관계가 전환점을 맞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1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일대일로(一帶一路) 국제협력 정상포럼’에 한국 대표단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고 이를 문 대통령이 수용하면서다. 우리 정부는 곧바로 박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단장으로 정부 대표단을 꾸렸다. 대표단은 14~15일 열리는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13일 오후 출국했다.

양국 정상 통화 후 즉각 대표단 파견 #中 공산당 상무위원도 면담하는 등 #중단됐던 고위급 대화 재개 의미 커 #일대일로, 64개국 대상 인프라 사업 #수천조원 들지만 수익성 회의론도

그동안 중국 정부는 명목상 새 정부 출범 전이라는 이유 등을 들어 초청장을 보내지 않았다. 하지만 양국 정상의 첫 전화 통화가 정부 대표단 파견이란 성과로 이어지면서 새 정부의 대중국 외교도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게 될 전망이다. 정부 당국자는 “시 주석이 문 대통령 취임과 함께 초청 의사를 밝힌 것은 매우 의미가 있는 전향적 제스처로 보인다”며 “국가적 차원에서 추진하는 이번 포럼에 중국이 거는 기대가 큰 만큼 양국 관계 개선에도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꽉 막힌 한·중 관계 돌파구 기대”

정부 대표단은 14일 오전 개막식 및 전체회의와 만찬에 참석할 예정이다. 둘 다 시 주석이 주최하는 자리로 우리 대표단과도 자연스럽게 메시지가 오갈 것으로 보인다. 박 단장은 “지난해 7월 성주 사드 배치 발표 이후 꽉 막혀 있던 한·중 관계에 돌파구를 마련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 단장은 그러면서 “포럼 참석 이후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중 한두 명과도 면담 일정을 조율 중”이라고 소개했다. 상무위원들과의 접촉은 지난해 7월 사드 배치 발표 이후 중단됐던 한·중 고위급 대화가 재개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잖다. 고위급 대화 채널이 복원되는 등 경색 분위기에 변화가 생겨야 갈등을 빚고 있는 사드 경제 보복 등 현안들에 대한 논의에도 물꼬가 트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침 이번 포럼에 김영재 북한 대외경제상을 단장으로 하는 북한 대표단도 참석하는 만큼 남북 대표단 접촉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14일 전체회의와 만찬, 그리고 6개 주제회의 중 정책소통 라운지에서 한 테이블에 앉는 등 남북 대표단은 하루에만 세 차례 자리를 함께하게 된다.

문재인 정부는 대선 공약 등을 통해 사드 문제로 교착 상태에 빠진 한·중 관계의 돌파구를 전략대화의 내실화를 통해 찾겠다는 구상을 밝혀왔다. 고위급 간 전략경제대화(SED)와 국방 당국 간 대화를 활성화하고 북핵을 비롯한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중국과 전략적 소통을 강화하는 등 안보와 경제 분야에서 관계 업그레이드를 꾀하고 있다.

이번 포럼에서도 정부 대표단은 중국 측에 북핵 폐기를 전제로 한 핵 개발 동결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강력한 압박과 함께 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대화도 병행돼야 한다는 새 정부의 의지를 전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논의와 별도로 중장기 경제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중국 정부가 큰 관심을 쏟고 있는 일대일로 정책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주문도 나온다. 일대일로(One Belt One Road)는 시 주석의 핵심 대외전략 중 하나다. 2013년 10월 시 주석이 유라시아를 육상과 해상으로 연결하는 거대 경제권을 만들겠다고 천명하면서 시작됐다.

14일 정상회의를 앞두고 지난주부터 중국 관영 CC-TV에선 연속 기획물인 ‘일대일로-대도공영(大道共赢:함께 번영하는 큰길)’을 쏟아내고 있다. CC-TV는 지난 9일 파키스탄 북서부의 댐 건설 현장을 보도했다. 빽빽한 산림에 둘러싸인 계곡에서 수십 대의 중국 트럭과 중장비들이 분주히 흙을 실어 나르며 기반 공사를 벌이는 현장이다. 중국 국가개발은행과 중국 정부 산하의 실크로드 기금에서 53억 달러(약 6조원)를 조달했다.

파키스탄 댐 건설 사업은 중국 일대일로 정책의 구조와 집행 방식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인프라가 태부족한 아시아·아프리카 개발도상국과 신흥국들이 중국 금융기관에서 빌린 돈을 중국 토목기업에 지불하고 중국인 인부와 중국산 자재·중장비를 수입해 도로·철도·항만·공항·발전소 등 물류와 에너지·교통망을 까는 작업이다.

“일대일로, 유라시아판 마셜 플랜”

중국 당국은 “일대일로는 유라시아판 마셜 플랜”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마셜 플랜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서유럽 재건 계획을 일컫는다. 일대일로 규모는 마셜 플랜의 100배가 넘는다.

중국 중서부 도시 시안(西安)이 출발점인 일대는 중국과 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 물류·교통망을 의미한다. 일로는 푸젠(福建)성과 광둥(廣東)성의 항만과 동남·서남아시아, 유럽, 아프리카의 항만을 잇는 바닷길을 일컫는다. 유라시아와 아프리카 대륙 북동부에 물류·교통·에너지 인프라를 건설해 경제적 유대 관계를 심화시키고 이를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지난해 1월 중국 국영 해운기업이 그리스 최대 항구인 피레에프스항 운영권을 3억6850만 유로(약 4800억원)에 사들인 사업은 일대일로에 대한 중국 당국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중국은 일대일로의 핵심 프로젝트로 유라시아와 아프리카 대륙에 6개의 경제회랑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경제회랑은 중국과 인도·유럽·동남아시아 등 주요 경제권을 철도와 도로 등 물류망을 중심으로 연결하는 프로젝트다.

일대일로는 관련 국가만 64개국에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2에 달하는 44억 명이 대상이다. 중국은 50개 국가·국제기구와 정책·자금 협력 계약도 맺었다. 잠재적 경제가치만 1500조원이 넘을 것으로 중국 당국은 추산하고 있다. 중국은 2015년 말 1000억 달러를 자본금으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을 주도하고 자국 안에선 400억 달러 규모의 실크로드 기금을 조성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중국의 국영기업들은 2014~2016년 3년간 500억 달러(약 56조원)를 직접 투자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중국 정부가 일대일로 참가국에 향후 5년간 최대 1500억 달러(약 168조750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일대일로 참가국의 수출품 2조 달러(약 2250조원)어치를 5년간 수입하겠다는 공언도 했다. 거대한 구매력을 동원해 일대일로 경제권을 키우겠다는 복안인 셈이다.

일대일로는 대규모 인프라 건설을 지렛대로 유라시아·아프리카 지역에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국이 추진하는 주변국 전략의 핵심 축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파키스탄 경제회랑이다. 지난해 4월 파키스탄을 국빈 방문한 시 주석은 460억 달러 규모의 경제회랑 공동 구축에 합의했다. 파키스탄 경제회랑은 파키스탄 남서부 과다르항에서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까지 3200㎞ 구간에 철도와 도로, 가스관을 건설하는 사업이다.

중국이 43년간 운영권을 딴 과다르항은 미 해군이 제해권을 장악한 믈라카 해협을 거치지 않고 중동에서 안정적으로 원유를 수입할 수 있는 교두보이기도 하다. 인도양에 해군 거점을 구축하는 등 대양 진출 전략을 펴고 있는 중국 해군의 핵심 거점인 것이다. 중국은 동남아시아와 인도양, 아프리카의 에너지 수송로에 위치한 항만의 운영권도 단계적으로 사들였다. 중국 해군 함정들은 이 지역의 10개 항만에 정박하며 수리와 보급을 할 수 있게 됐다. 홍해와 아덴만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인 아프리카 소국 지부티 도랄레 항구의 10년 사용권을 따내 해군 전함의 출입이 가능한 복합항으로 확대하는 공사도 진행하고 있다. 이 항구 인근에는 이르면 7월 말 무기 저장과 선박 보수, 해병대 주둔지로 활용될 중국 최초의 해외 군사기지가 완공될 예정이다.

일대일로는 철도 공정과 서부 대개발 등 대규모 토목사업을 통해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던 중국의 출구전략적 측면도 있다. 포화 상태에 빠진 건설·제조업 분야의 탈출구를 나라 밖에서 찾은 것이다. 특히 공급 과잉이 심각한 철강 산업은 이를 통해 장기적인 수요처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안갯속 수익성·자금난 산 넘어 산

홍콩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SCMP)는 지난 12일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 부행장이 일대일로 추진에 들어가는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세계은행 등 국제 금융기관에 금융 지원을 요청했다고 전했다. 이는 사업과 관련한 자금 압박이 심각하다는 방증으로 풀이된다. 세계은행 등 국제 금융기관들은 아직 일대일로 사업에 뛰어들지 않고 있다. 사업의 타당성 검증이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지정학적 리스크도 만만찮은 도전이다. 파키스탄 과다르항은 반정부 저항 세력이 수십 년간 정부군과 대립해 온 안전 취약 지구의 한복판에 위치해 있다. 경비 병력만 1만2000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군사적 안전이 확보되지 않고는 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한 개발은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런 이유로 회의론자들은 과연 수익이 날 수 있겠느냐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제기한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투자 추세도 주춤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은 일대일로 국가에 145억 달러를 투자했다. 전년 대비 2%포인트 감소했다. 중국의 전체 해외 투자가 40% 늘면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것과 대비된다.

장밋빛 전망과 우려가 교차하고 있지만 장기적인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제조업의 활로를 찾는 한국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민회은 한국종합물류연구원 연구위원은 “항만 개발은 토목 건설뿐 아니라 설계와 정보기술(IT), 운영, 마케팅 등이 접목된 복합 개발사업”이라며 “이 분야엔 국내 업계가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정책적 뒷받침을 받으면 기회를 선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리 정부는 일단 관망세지만 상황이 유동적으로 변할 수 있는 만큼 예의 주시한다는 입장이다. 외교 당국자는 “일대일로가 중국의 동북 3성으로 확대되고 한반도와 연결되는 단계까지는 아니지만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하는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주시하고 있다”며 “리스크 요인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잠재력이 크다는 점에서 우리 경제와의 접목 가능성을 면밀히 따져볼 것”이라고 말했다.

정용환 기자, 조수영·나영인 인턴기자
cheong.yongw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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