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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첫 사업 ‘일자리 위원회’ 성공하려면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31호 02면

사설

새 정부의 ‘일자리 위원회’ 추진 방안이 나온 직후인 11일 통계청 발표 고용동향은 여전히 암울한 수치를 전했다. 지난달 실업률이 4.2%, 4월 기준으로 2004년(4.5%) 이후 가장 높게 나왔다. 젊은이들의 고통은 더욱 심해 지난달 15~29세 청년실업률이 평균치의 세 배 가까운 11.2%에 달했다. 현재의 통계 방식을 도입한 1999년 이후 18년 만에 최고치였다. 사회 첫발을 떼자마자 아득한 고용절벽에 가로막혀 절망하는 젊은이가 갈수록 늘고 있다. 사회의 새싹들이 희망과 포부를 품어보지도 못하고 3포(연애·결혼·출산 포기) 세대니 5포(내집 마련, 대인관계까지 포기) 세대니 하는 자조 속에 그대로 주저앉아버리는 사회에 미래가 있을 리 없다.

문 대통령이 취임 첫 사업으로 ‘일자리 위원회’를 들고 나온 건 이런 점에서 적절하다고 본다. 일자리 부족은 저출산 현상과 더불어 우리 사회의 안녕과 행복,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최대의 적이다. 경제성장 둔화와 산업·노동·교육 구조의 왜곡, 취약한 복지 등이 복합적으로 응축된 망국적 난제라는 점에서 고용 창출은 대통령이 취임 일성으로 챙길 만한 어젠다다. 더욱이 일자리 정책을 부처마다 중구난방 식으로 추진하다 보니 막대한 예산 투입에 비해 마땅한 성과를 내지 못해 온 터여서 범정부 차원의 강력한 컨트롤타워 등장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다만 이 조직이 제대로 작동하고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새겨들어야 할 지적들이 있다.

우선 기업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공공부문 81만 개 일자리 늘리기 공약은 문재인 정부의 ‘J노믹스’에 기반한다. 기업보다 사람에 투자해 일자리를 늘리고 생산성을 제고해 소득 주도 성장을 하겠다는 것이 요체다. 사회인프라 구축 등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간접적 일자리 정책이 그동안 ‘고용 없는 성장’이나 사업장 해외이전 가속화 등으로 고용 증대라는 낙수효과를 제대로 내지 못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국민세금을 들이고 공무원이나 공공기관·공기업 일자리를 늘려서라도 실업을 줄이겠다는 당위성을 내세운다.

하지만 공공부문 일자리는 목표가 아니라 수단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시장과 기업의 힘만으로는 일자리가 충분히 늘지 않기 때문에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려 가처분소득 증대→소비·내수 진작→민간투자 증진→고용 증대의 선순환을 만들어내는 것이 궁극적 목표다. 공공부문에 대한 재정 투입은 경기활성화를 위한 마중물인 셈이다. 만일 공공부문에 재정을 쏟아도 이런 선순환 효과가 뚜렷하지 않다면 생산성 떨어지는 철밥통을 늘리면서 세금만 축내는 실패한 정책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민간 활력을 키우지 못하는 큰 정부 지향은 재앙이다. 재정적자 누적과 경제 전반의 비능률로 혹심한 경제위기를 초래한 유럽과 남미 일부 국가의 사례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근래 세금이 잘 걷힌다고는 하지만 지난해까지 9년 연속 재정적자를 기록했고 올해도 적자 폭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단기간에 가시적 성과를 보겠다는 조급증을 버려야 한다. 일자리 위원회는 100일 안에 의미 있는 정책을 내놓겠다고 한다. 청와대에 상황판까지 만들어 대통령이 직접 챙길 태세다. 진지한 자세라는 점수를 얻을 수는 있지만 자칫 부처·기관별 계수 경쟁이라도 벌어지면 시간제 일자리, 단기 공공근로 같은 불요불급한 일자리만 양산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괜찮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대통령 임기 내내 기업에 온기를 불어넣어 중장기적으로 추구할 일이지 기간을 정해 놓고 속도전을 벌일 일은 아니다. 공공부문 못지않게 민간부문 일자리 확충을 위한 구조개혁에도 힘써야 한다. 제조·금융·통신·콘텐트 등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일자리는 민간 기업에 많기 때문에 일자리 근본 대책은 기업의 고용 창출 여건을 조성하고 노동시장의 역동성을 제고하는 일이다. 독일·스웨덴·네덜란드 등에서 그랬듯이 정부의 중재로 사용자·근로자가 서로 조금씩 양보해 노사정 대타협을 이뤄내야 한다. 정부가 손쉽게 세금을 동원해 할 수 있는 공공 일자리 늘리기의 한편으로 고통스럽더라도 공공·교육·금융·노동 4대 구조개혁을 추진해 사회 전반의 활력과 생산성을 높이려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일자리 위원회가 호응을 얻으려면 이런 점들을 유념해야 한다. 공공부문 일자리가 종국엔 경제활성화에 기여해 민간 기업 일자리 증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을 국민에게 줘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여론의 반대는 물론이고 공공 일자리 사업을 위한 10조원의 추가경정예산안도 여소야대 국회에서 벽에 부닥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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